14.녹지 않는 아이스크림과 보스턴 차 사건을 그린 색이 바랜 그림
“혹시 보스턴에 가본적이 있나요?”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부엌에서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곳에서는 랍스터를 조리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게와 비슷한건 부정할 수 없다.
사마도 이 남자는 보스턴에 관한 무언가의 추억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20년 전 보스턴에서 그때의 추억을 가능한 오래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서,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습니다. 저는 그 추억을 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런 가게를 열게 되었죠. 저는 이 가게를 약 20년 동안 운영해 왔습니다. 그 수십 년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죠. 그 일들은 저에게 무언가 원기를 불어넣어줍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만한, 그런 생명이 깃든 것처럼 느껴지는 무언가들요.” 남자는 이렇게 말하며 애수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의 표정은 무언가 과거를 보는 것 같았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떼처럼.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때의 감정, 추억을 잊지 못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하다니, 덕분에 저도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을 더욱 잘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음식은 정말로 풍미가 깊고 맛있었습니다.”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감사를 표한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분명 그 도시에서 청춘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런 기억들이 사람을 살게 만들어 줄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잘 먹었다고 이야기하고 가게를 나온다. 이제는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나는 길을 가며 떠나버린 친구와 함께 갔던 보스턴의 식당과, 퀸시마켓을 떠올린다. 그곳에는 정말로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랍스터 요리와 조개, 해산물부터 면 요리와 디저트까지. 그곳에서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사고 돌아다니거나, 친구나 연인과 함께 즐기고 있었고, 즐거운 음악들이 그 장소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아까 전에 랍스터 요리를 이미 먹었기 때문에 다시 먹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젤라또 같은 느낌의 아이스크림이었다. 우리는 추운 겨울날,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정다운 느낌이 가득한 곳을 돌아다녔다. 사람들 중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마켓 중간 정도에 뚫린 다른 길로 내려갔다. 그곳에서는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팔고 있었다. 예를 들어 보스턴을 상징하는 큰 역사적인 사건인 ‘보스턴 차 사건’과 어울리는 차를 판다든가, 보스턴 항구에 있을 법한 형형색색의 조개껍질을 모아 유리병 안에 담아 놓은 기념품이라든가, 아니면 액세서리라든가, 랍스터가 그려진 소주 컵이라든가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보스턴 차 사건’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하나의 화폭이었다. 그 그림은 굉장히 특이한 화풍으로 그려져 있었다.
빈티지 일러스트처럼 종이 질감이 살아 있고 색이 바랜 듯한 느낌이기도 했고, 노스탤직 페인팅처럼 미국의 독립군들이 영국으로부터, 그리고 미국의 차 상인들로부터 반기를 들던 장면 같았다. 뿌옇게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연출이기도 했다. 그 그림의 주인공은 역시 대표적인 주동자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 새뮤얼 애덤스였다. 이 그림은 약 50여 명의 주민들과 상인들이 차를 바다에 버리고 있는 모습을 세세한 종이 질감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은 꽤나 화가 나 보였으며, 차 상자를 들고 역동적인 모습을 취하며 바다에 차를 던져 넣고 있었다. 배는 목재로 만든 듯한 느낌의 갈색 빛이 도는 배였으며, 그림의 왼쪽 부근에는 미국 국기가 달려 있는 모습이었다. 아래에는 마치 이 사건을 선두지휘하는 듯한 느낌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망토를 걸치고 검정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이 모든 장면이 굉장히 퇴색된 듯한 색조로 그려져 있었다. 아마도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이런 식의 화풍을 즐겨 그리는 모양이다. 옆에 있는 다른 그림도 비슷한 풍의 화풍으로, 오래된 사진처럼 색이 누렇게 바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옆에는 그 그림을 넣을 수 있는 액자도 같이 놓여 있었다. 아마 관광객들을 위한 그림인 것 같았다. 우리는 그 그림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아이스크림은 잘 녹지 않았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그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 그림에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종류의 힘이 있었다. 이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집에 다다랐다. 도어락을 누르고, 문을 열었다. 고독의 솔내음이 뼛속까지 스민다. 아무도 없는 나만의 방이다. 내 집은 여전하다. 15평 남짓한 작은 방, 앞에는 작은 발코니, 그리고 뒤에는 고흐의 그림과 달리의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옆에는 떠나간 친구가 그려준 내 초상화가 걸려 있다. 나는 쇼파에 몸을 던지고 잠시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오늘은 벌써 너무나도 졸리다. 그렇게까지 많은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피곤하다. 나는 항상 자기 전에 30분 정도 책을 읽고 자는 편이다. 피곤하기는 하지만,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