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간의 관계를 신호등에 비유한다면

신호등에 비유하는 관계의 메커니즘, 그리고 코드:빨간불(기다림의 코드)

by Norturne

내가 사람 간의 관계를 신호등에 비유한다는 것은, 그냥 평범하게 생각하는 일상 속의 신호등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우리가 도보를 걸어갈 때, 위아래로 신호등을 흘겨보곤 한다.

우리가 신호등을 보는 이유는 대강 이렇다.

“아, 언제 파란불로 바뀌는 거야? 진짜 시간 안 가네…”

“빨간불, 양심적으로 너무 긴 거 아니야? 진짜 이건 좀 아니지…”


그리고 우리는 바쁜 와중에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작은 머리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바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8분 후에는 학원에 가야 하고, 10분 후에는 수업이 시작하네? 1시간 뒤에는 밥을 먹어야 하고, 그 뒤에는 다시 수업, 공부…”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와중에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브런치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잠시 잊고 살았을지도 모르는 ‘관계의 소중함’이다.


나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담당하고 있다고.


그 이유는 다음과도 같다.

우리를 잠시 멈춰서게 하고, 우리를 되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건 짧게 생각하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정말로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절대로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그런 관계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것같이 보인다.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에 대해, 요즘 정말로 감사하게 느낀다.

내가 관계에 대해 고찰하게 된 것도, 내가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월드와이드한 21세기에,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도 훨씬 더 다양하고 각양각색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것은 과거와는 다르게 사이버상으로도 일어나게 되었고, 그것은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소중한 사람을 한 사람 품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다시 한 번 더 말하고 싶은 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신호등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관한 신호등이다.

신호등은 매우 간결하고 곧게 뻗은 도로, 그 위에 반짝거리는 형광빛을 내뿜는, 신세대에 걸맞는 새로운 발명품이다.


빨간불일 때, 우리는 멈추어 선다.

노란불일 때, 우리는 건널지 말지 고민한다.

파란불일 때, 우리는 앞뒤도 보지 않고 빨리 건너간다.


나는 이 부분을 관계에 비유할 것이다.


빨간불일 때, 우리는 잠시 멈추어 서서 기다려야 한다.

상대가 준비가 될 때까지, 우리는 아주 길게 느껴지는 억겁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너무나도 길지만, 상대를 위해서라면 ‘기다릴 수밖에는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시간을 기다리지 않으면, 우리는 상대에게 알지도 못한 채 실례를 범하게 된다.

그것은 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노란불일 때, 우리는 건널지 말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건너갈 건지, 건너가지 않을 건지 빠르게 선택해야 한다.

물론 물리적인 신호등의 초 단위보다는 느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제한된 시간 안에 어떠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노란불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너갈 거면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다가갈 거면 그만큼의 각오를 해야 한다.


내가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받아들여질 수는 있을지,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멈추어 설 때, 나는 그 정도의 생각을 하고 멈추어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멈춘다면 그만큼의 생각을 갖고 멈추어야 한다.

미래를 어떻게 할 건지, 두 보 전진을 위한 일보의 후퇴인지,

아니면 단지 나를 위한 멈춤인지, 걸어가고 걸어가지 않고, 어떤 식으로 행동할 건지 명확하게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슴이 두근대고, 어떤 식으로 행동하면 될지 모를 것 같은 때에, 우리는 결단력을 발휘해야 한다.


파란불일 때, 우리는 앞뒤 가리지 않고 걸어간다.

관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파란불은 관계에선 위급상태다.

상대가 크게 도움을 필요로 할 때, 큰 각오와 결심을 하고서 우리는 있는 힘껏 달려야 한다.

상대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빨간불: 기다림과 멈춤, 지금은 ‘멈춤’의 시간이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때로는 항상 다가가기만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 누군가와 싸우거나, 혹은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따지거나 서로를 미워하는 감정을 너무나도 쉽게 가진다.

그리고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애초에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환경과, 그들이 사는 환경은 너무나도 다르고,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만 서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과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공감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이럴 때 상대에게 섣불리 화를 내거나, 나쁜 말을 한다거나, 욕을 한다거나 하는 행동은 꽤나 미성숙한 행동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채로,

그러한 말을 너무나 쉽게 해버리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나, 그 사이의 거리는 친구 사이라고 해서 쉽게 깨트릴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물리적으로 그 친구와 옆에 바짝 붙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거리는 멀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상대방을 조금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상황일 때, 빨간불에 사람과의 관계를 정의한다.

우리는 빨간불일 때, 길을 건너지 않고 기다린다.

이러한 기다림은 나와 상대방의 마음의 거리일지도 모른다.


건너가지 않는다는 것은,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의미다.

내가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기에, 관계를 유지했을 수 있었던 경험이 있다.


그때는 내가 꽤나 마음속 깊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을 때였다.

나는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고, 글을 쓸 것이라는 생각조차도 못 하는 때였다.

너무나도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분노의 말,

그리고 상대에게 무례하게 구는 행동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정리할 시도조차도 할 수 없었다.

이럴 때는 꽤나 예민하다.

왜냐하면 타인에게 내가 상처를 쉽게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은 나에게는 꽤나 큰 문제이다.


나는 타인에게서부터 상처를 많이 입었기 때문이다.

나는 굉장히 예민하고, 꽤나 미묘한 뉘앙스에도 큰 상처를 입어버렸기 때문에

내가 타인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

타인이 나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에도

나는 어느 정도의 예민함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때 꽤나 깊은 우물 속에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오카다 도루처럼, 나는 깊은 우물 속에 혼자 들어가서

며칠이고 나오지 않고 스스로를 성찰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서 거의 아사 직전일 때,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우물 속에서 빠져나왔다.


우물 속은 매우 고독했다. 아무도 없었고, 그곳에는 나와 나밖에 없었다.

나와 나는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때로는 조용해지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고, 밝아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아무것도 아니기도 했다.


그 우물에 들어간 것은 나의 자의였다.

왜냐하면 나는 그곳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할때, 당황스러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나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꽤나 신기한 경험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괴리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은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날 어떤 식으로 생각할지가 두려워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를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은 ‘나’이다.

또한 내가 그런 댓글에 예민하지 않게 반응하는 것도, 또한 내가 할 일일 것이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을 멈추는 건 꼭 좋지 않은 게 아니라,

때로는 타인을 배려하는 행위,

혹은 그 이상의, 나를 배려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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