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를 읽고:청소년의시선으로 바라본 삶과 죽음

고등학교 2학년이 보는 자살,우울증<내 경험을 녹여서>

by Norturne

오늘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책, 『시한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놀랍게도 16세, 중학교 3학년이다. 아마도 인터넷 뉴스나 유튜브에서 『시한부』의 저자인 백은별 양이 1억 원을 기부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뉴스를 보고 『시한부』라는 소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녀가 기부를 하기 전부터 이 소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나 또한 학생으로서, 그리고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이 책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작가가 어린 나이라는 점에서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졌고, 내 또래의 아이가 어떤 식으로 소설을 써내려갔을지 궁금해하며 책장을 펼쳐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한부』라는 소설을 유튜브나 뉴스, 혹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접했을 것이다. 나 역시 SNS를 통해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나도 같은 학생이었고 자살과 관련된 고민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반발심처럼 느껴져서, 처음에는 그 내용이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것같다. 약간 “내가 저것보다 더 힘든데?“ 하는 심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은 많이 줄어들었다. 『시한부』는 중학교 2학년인 수아라는 주인공이 소문에 휘말리고, 그 결과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그리고 자해와 자살 충동까지 겪게 되며 삶의 의미를 점점 잃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에는 대화체가 많이 등장한다. 친구와의 대화, 선생님과의 대화 등, 우리 학생들이 일상에서 자주 겪는 상황이 반영되어 있어 현실감이 높았다.


요즘 트위터나 유튜브를 보면 우울증 브이로그라든가 자살 충동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자주 보인다. 그리고 나는 학생으로서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사실 나 자신도 우울증을 겪었고, 자살 충동을 느낀 경험이 있었다.


자살 충동은 대개 꽤나 깊은 허무주의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허무주의, 즉 니힐리즘(Nihilism)이란 세상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상이다. 결국 인간은 모두 죽게 된다는 생각에 빠져버리면, 지금 당장 죽어도 아깝지 않다는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러한 허무주의적 사고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뭔가를 원한다고 해도 그 열정이 금세 퇴색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시한부』의 주인공 수아도 평범한 중학생처럼 보인다. 특별히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대인관계에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울증에 시달린다. 작가는 이를 통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여러 논문에 따르면, 우울증을 더 쉽게 겪는 뇌 구조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내가 그걸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지막에 주인공이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되는 부분이다. 살아가는 데는 꼭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원해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냥 태어났기에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멋진 꿈이나 높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울한 청소년들이나 자살을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는 꼭 그런 큰 목표가 없어도 살아갈 만한 자격이 있다는 점에서, 그 장면은 큰 위로가 되었다.


주인공은 일기를 많이 쓴다. 그 일기에는 허무주의적 인식이 짙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하지만 그대가가 너무 공허했다”라거나 “이제 정말 무감각해진 건지 아무 생각이 들지가 않는다” 같은 문장들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수아는 “디데이 덕분에 내가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어떤 날짜를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여준다.


나 역시 사소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때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진’이다. 나는 사진을 찍는 데 묘한 집착을 한다. 과거에 찍어둔 사진을 보며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고, 추억을 많이 곱씹는다. 그런 사진이 사라져버리면 그때의 나까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져서 몹시 슬플 때가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시한부』인 이유는, 주인공이 스스로 죽을 날을 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차라리 내가 죽을 날을 미리 정하면 어떨까”라는 자살 충동 속의 생각이었다.


자살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리고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안다. 그들은 ‘사는 것도 두렵고, 죽는 것도 두렵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나도 그랬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청소년 자살률 역시 심각하게 높다. 내 주변 친구들만 봐도, 자살을 한 번쯤은 장난처럼이라도 생각해본 사람이 많았다.


『시한부』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이나 우울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살아갈 의미를 찾았다는 사람도 있고,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작가는 바로 그런 위로를 전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아주 극심한 자살 충동을 겪은 적이 있다. 그래도 살아 있다. 다만 그 시절에는 살아 있는 것이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내 뇌의 스위치가 모두 꺼진 채로 숨만 쉬며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그저 밥 먹고 숨 쉬는 존재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괴로운 시간을 버티다 보면, 분명히 즐거운 순간도 따라온다. 충동적으로 자살을 결심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종교가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자살을 선택한다. 지금 내가 태어나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살아 있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을 수많은 감정과 경험들이 지금 내 삶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살아가는 게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힘든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소원 중 하나쯤은 이뤄질지도 모른다. 나도 그 가능성을 믿고 살아간다.


매우 힘들지만,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말을 나 스스로에게 계속 건네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시한부』 외에도 자살을 다룬 창작물들은 다양하다. 마이너한 작품부터 메이저한 콘텐츠까지 많다. 개인적으로는 ‘少女レイ’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이 노래도 청소년 자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가사를 보면 우리가 살아왔던 시간의 색깔이 뚜렷하게 묻어나온다.

“두번다시는 웃지못하는 너”라는 가사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슬펐다 ㅠ.ㅠ

그리고 또, 이 책의 목차가 굉장히 특이하게 느껴졌는데, 사자성어로써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의 목차도 개인적으로 취향이었다.

<댓글로 자신의 우울증과 관련된 경험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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