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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데트 Apr 04. 2024

비와 우산

엄마라는 우산

”부산지역 호우 주의보 발표, 내일까지 많은 비가 예상되니.. “


오후부터 비가 많이 온다는 재난문자이다.

큰 비가 더 오기 전에 서둘러 마트로 향했다. 집 근처 가까운 곳도 있지만 한판에 3900원 한다는 계란을 사러 한 정거장 거리의 마트에 갔다가 비를 흠뻑 맞았다.

그 외에도 호박, 고구마, 감자, 근대 등등 일주일치 식량을 잔뜩 쟁여 차에 몸을 실었다.

아이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장바구니를 후다닥 정리하고 숨을 돌리며 소파에 앉았다.

두꺼운 유리창에 빗물이 부서진다.

탁탁탁, 우두두 노크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폭우가 쏟아지는 오후의 하늘은 어두컴컴하고 조금은 불그스름하다. 세찬 비를 피해 따뜻한 집안에서 휴식을 취할 때면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가끔 비가 내릴 때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첫 번째 장면은 억수비가 내리던 날 우산이 없던 친구들과 양손에 신발을 들고 맨발로 비를 맞으며 뛰어가던 기억이다.

우리는 비굴하게 건물 사이로 비를 피하느니 빗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뭔지 모를 시원함과 축축함과 해방감을 느꼈다.

깔깔대며 전철역까지 뛰어가서는 낡은 포차 아래서 뜨뜻한 어묵국물로 몸을 녹였다.



두 번째는 비 오는 날 정류장까지 마중 나와 계시던 엄마의 뒷모습이다.

친정집은 높디높은 고바위에 있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오려면 10분을 걸어 내려와야 한다.

엄마는 내가 전화를 하면 군소리 없이 우산을 챙겨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내리사랑이라고 반대로 엄마가 마중을 부탁할 때면 입이 댓 발은 튀어나와서 걸어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엄마는 늘 나에게 우산이었다. 잔소리가 조금 심한 우산..


뜨거운 햇빛도 장대비도 온몸으로 막아 주셨다.

그 밑에서 나는 투덜거렸다. 덥다, 뜨겁다, 힘들다..

하지만 몰랐다. 엄마라는 우산은 햇빛과 비를 막느라 닳아서 너덜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내 상처만 너무 아파서 엄마의 주름살, 검버섯, 굽은 등을 보지 못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알 것 같다.

완전하고 온전히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은 모성이라는 것을.. 그리고 인간의 본능이 그러하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귀여운 아이의 발가락에 폭풍 뽀뽀를 하며 찹쌀떡 볼따귀에 얼굴을 묻을 때면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에 휩싸이곤 한다. 아련함, 미안함, 사랑스러움, 책임감 등등..


이제는 내가 가족들의 튼튼한 우산이 되어줄 수 있을까?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건 막연한 책임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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