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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데트 Jun 09. 2024

남의 아들 첫 영성체에 내가 눈물이 나는 이유

처음이라는 반짝임

새하얀 드레스에 알록달록 붉은 화관, 작은 초를 두 손에 쥔  아이들이 한 줄로 총총히 늘어섰다.

한 발짝 한 발짝 설레는 발걸음.


“000 라파엘."

“네, 여기 있습니다."


그 순간 아이들은 세상 누구보다 하얗게 빛이 나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친한 엄마의 큰아이가 있었다. 머리 한 뼘은 더 큰 탓에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

3학년 동생들과 함께 조금 늦은 첫 영성체 준비를 했기 때문.

여기서 ‘첫 영성체'는 유아 세례를 받은 어린이들이 처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을 말한다.

‘성체’는 사제가 축성을 한 밀떡으로  ‘예수님의 몸’으로 불리는 성체를 모시는 것은 미사안에서 가장 중요한 전례이다.



6학년이라 학원 숙제에 교리까지 듣느라 이리저리 힘들었을게 뻔하지만, 끝까지 해낸 그 집 아들이 참 대견하다.

일주일에 세 번 교리 듣기, 평일 미사 참례, 수많은 기도문 암기, 율동 연습에, 성경 필사까지…


듣기만 해도 빡빡한 몇 개월의 여정.

게다가 힘들었던 그 아이의 6년을 잘 알아서일까. 갑자기 울컥 무언가 올라오면서 주책맞은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사실 00엄마를 알게 된 건 불과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냉담 중이던 그녀를 이끈 건, 일하는 나 대신 우리 아이의 소풍을 따라간 친정 엄마.

00의 동생은 우리 아이와 동갑이고 둘은 같은 유치원을 나왔다. 당시 유치원 소풍을 다녀온 친정 엄마는 종일 그 엄마의 이야기를 했다.



“그 집 엄마가 딴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도 오래 했다던데, 지금은 관면혼배도 안 하고 해서 성당을 안 나오고 있다네.”

“그 집 엄마를 오늘 성당에서 봤는데 미사를 드리고 오는 건지 성전에서 내려오더라."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말로만 듣던 그 집 엄마를 영접했다.

처음으로 아이 둘을  데리고  주일학교에 나온 것.

00 엄마의 사교성 덕분에 낯가림 많은 나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독서 모임 단합회 덕분에 더욱 가까워진 우리는, 서로의 속 이야기를 하며 꺼내기 힘들었던 지난 시간도 나누게 되었다.




첫 아이가 학교 적응에 힘들었던 순간들.

폭력적이진 않지만 수업시간에 종종 나오던 특이행동.

그 행동으로 인해 찍혀버린 비호감 낙인과 그로 인한 주변 친구의 괴롭힘.

학교 문턱을 들락날락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던 순간.

과거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숨죽였던 시간들과 상처들.




그 아이와 엄마의 지난 시간들을 알아서일까.

얼마 전 00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하던 이야기가 다시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엄마를 만나면서 그분의 이끄심을 느끼고 있어요.

아이들 독서모임을 준비하고, 걷기 대회를 신청하고, 미루고 미룬 관면혼배를 하고, 00가 첫 영성체를 하게 되고.

드문드문하던 미술수업을 그만두고 나 자신에 대해 다시 탐색하고. 이렇게 엄마들과 사적으로 식사를 하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처음이에요.

학원을 운영하느라 늘 조심스러웠거든요. 사실 요즘 나 너무 신나요."


내가 누군가의 시작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음에 감사했고, 또한 부정적인 기운을 옮기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과거는 현재를 지탱한다.
-태도에 관하여-



성전을 나서며 짧은 기도를 드렸다.

아팠던 만큼 더 단단해져 그 상처를 뚫고 깊은 뿌리를 내리길.

새로운 시작을 하는 그들 가정에 축복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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