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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데트 Jun 08. 2024

어머니 우리도 리조트에서 제사 지내면 안 되나요

어느 며느리의 소망


뿌연 창문너머로 초록색 배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루종일 비가 올 거라는 예보와 함께, 여행 이틀차에 워터파크를 가기로 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어제 저녁 시댁 식구들과 보낸 즐거운 시간들 때문이다.




한 달 전 주말 즈음 남편과 술잔을 기울이다,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다 같이 리조트에서 모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즉흥적으로 뱉은 말이었는데 덥석 물어, 리조트 예약까지 완료한 남편.


‘아니, 이 남자가 이렇게 실행력이 좋은 사람이었나?’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사는 형제들, 십 년 넘게 결혼생활을 하며 시댁모임은 명절 때 제사준비로 모이거나 어머니 생신 때 점심 한 끼 먹는 게 다였다.

이렇게 외부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단합대회를 하기는 처음이다.

다 함께 계비 지원을 받아 해외여행을 가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3남 2녀에 딸린 자식들까지…

전 식구가 긴 여행의 날짜를 맞추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신기한 것은 이번 여행은 시기가 이리저리 들어맞았다는 것.

황금연휴에, 아이 학교의 재량 공휴일, 마침 어머니 생신에, 나의 휴무일까지 겹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리조트에 대한 정보가 없었지만 일단 워터파크가 있다는 말에 아이는 신이 났다.


당일날 비가 쏟아질까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 그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다들 뭘 그리도 바리바리 싸 오셨는지.

반찬에 밥에, 직접 손질한 한치회에 포장해 온 족발, 편육, 해물찜까지…

다들 술 한잔 하며 흥이 오를 무렵, 야외 포차에 나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리조트 잔디밭에 있다는 야외포차는 생각보다 더 운치 있었다.

초록색 잔디 위로 밤하늘 별처럼 늘어선 캠핑조명들.

고개를 돌리니 노란 테이블이 군데군데 있었고 맨 앞 무대에는 객원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쪽 잔디밭 공터에는 아이들을 위한 축구공과 미니 골대가 있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가족들이 배드민턴을 치거나 비눗방울 놀이를 했다.




음악과 노래와 맥주와 잔디밭이라니…

요즘 축구교실에 다녀 축구부심이 남다른 아이는 골대를 보자마자, 형아들과 공을 차기 시작했다.

이렇게 푹신푹신한 잔디라면 아이가 백번 뛴다 해도 안심이 되었다.


이 모든 장면들이 꿈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모임이 이렇게 즐겁나면 얼마나 좋을까.

매년 명절을 위해서 모이는 우리는 제사라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동지들에 가까웠다.

좁은 시골집에서 전투적으로 전을 부치고 다음날 새벽에 후다닥 제사를 지낸 후 성묘 미션까지 완료하고 나면 다들 드래곤볼처럼 뿔뿔이 흩어진다.


여유와 담소보다는 일거리가 많은 이틀이다.

거기다 식구들이 가고 나면 여든의 어머니는 굽은 허리를 두드리며 한바탕 대청소를 하실 것이 뻔하다.



이렇게 남의 집에서 모이니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가 입을 떼셨다.


“이렇게 밖에서 자고 맛난 것도 먹으니 참 좋구. 방도 넓고 좋네 좋아. “

‘어머니, 우리도 다음부터는 리조트에서 제사 지내요.'

순간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차마 뱉지 못했다.

저번 명절 때 전을 부치며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호텔에서 제사를 지낸다더라, 너희들은 내가 죽고 나면 그렇게 해라."


‘어머니, 조상님들도 호캉스 한번 하셔야죠.’


아마도 오늘밤은 못다 뱉은 말을 꿈속에서 중얼거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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