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오데트 Jun 13. 2024

정말 거북이 클럽 한번 만들어 봐?

느리게 산지 42년째

박쌤은 대기만성 스타일이야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첫 직장이었던 00 여성병원의 실장님이 나에게 한 말이다.

한마디로 일머리가 없고 일의 습득력이 떨어지며 손이 느리다는 말.

하지만 그때는 그 말조차 위로가 되는 시절이었다.

가뜩이나 어리바리한 데다가, 성격이 대단하다는 윗선임을 만나 매일매일이 눈물바람이었다.




안 그래도 일을 못하는데, 매번 혼을 내는 통에 나의 두 손과 발은 더 바보가 되었다.

방사선촬영 사진도 요즘처럼 컴퓨터 영상이 아니라 현상기로 현상을 하고 그 필름을 가지고 환자가 진료실로 가는 시스템.

거기다 당시만 해도 시절이 시절인만큼 권위적인 원장님들이 몇몇 계셨던 것 같다.

혹시라도 검사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자들 앞에서 눈물이 쏙 빠지게 망신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특수촬영을 위한 주사세트 준비는 왜 그리 오래 걸리는지.

나의 자신감이 점점 떨어져 바닥을 치고 있을 때쯤, 실장님이 해주시던 그 한마디.

꼬아들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따뜻한 한마디였다.




그렇게 시간을 돌아 돌아 지금의 나는 과연 세월에 닳고 닳아 조금은 빠른 사람이 되었을까?

슬프지만 시간이 지나도 타고난 기질은 변하지 않는지, 나는 아직도 느리고 재빠르지 못하다.

요리에도 소질이 없고 집안일도 야무지게 하지 못한다.

게다가 성격상 작은 병원에서 일하는 게 맞지만 바쁜 병원에서 미친 듯 일하고 있다.

업무와 성격이 맞지 않음에 매일 힘들어하고 있을 때쯤, 글쓰기 챌린지의 멤버 한 분이 올린 글을 읽게 되었다.





‘빨리빨리 문화의 대한민국에서 나는 비효율적인 사람이었다.'

그녀의 문장에 가슴이 시렸다.


'참 힘들었겠다. 나도 참 힘들었거든. 그리고 지금도 참 힘들어.'


늘 일처리가 느릴까 봐 눈치 보고, 나의 가능성을 믿지 못했다.

전속력으로 달려도 남들만큼 해내지 못하니 종종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 글의 마무리조차 나의 생각과 닮아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의 속도로, 조금 더 부지런히, 느린 대신 꼼꼼히.


그녀의 결론이었고 나는 거기 두어 가지를 더하려고 한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하기’

‘성실성 인정받기.’




그 글에 댓글로 느린 사람들끼리 거북이클럽을 만들자고 하니 몇몇 분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셨다.

 

정말 언제 한번 거북이 클럽 한번 만들어 봐?



거북이는 느리지만 포기를 모른다.

느리게 삶을 살아내며 알게 된 한 가지는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목표에 도달한다는 것.

그리고 천천히 가는 동안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성장한다는 사실. 

세상에 모든 거북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느려도 행복하게 살아요.
멈추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도착할테니


















매거진의 이전글 고난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