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루투스

by 김과장

"부루투스, 너마저!"

역사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어렴풋이 한번쯤은 들어본 플루타크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야기이다. 카이사르가 죽기 전에 정말 이런 말을 했는지 여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유명한 호사가가 창작한 얘기라는 것을 어디선가 읽어본 기억이 있긴 하다. 갑자기 플루타크 영웅을 언급하는 이유는 기대치와 불공정에 대한 사적인 견해를 떠들어 보고싶기 때문이다.


심복에게 배신당한 카이사르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부루투스 입장도 생각해 볼 만하다. 독재, 집정관 등 당시 정치배경에 대한 논의를 하자는 게 아니라, 현대의 일상 속에서도 매일같이 재연되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부루투스는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왜 다른 사람들한테는 별말 안 하면서 나한테만 뭐라고 하지, 왜 다들 하는데 나만 콕 집어 잘못했다고 하지? 이런 생각으로 처음에는 당황했겠지만, 곧 칼을 고쳐 잡고 확실하고 깊게 카이사르의 급소를 한번 더 찔렀을 것 같다. 뭔가 공정하지 않은 잣대를 적용해서 다른 이들에 비해 과한 죄책감을 유발한다는 피해의식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게 좋은 것은 맞지만,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대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저 사람이라면 어떨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고 나름대로 그 기대의 신뢰성에 대해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불공정을 정당화한다.

"너까지 이러면 안 되지!", "넌 아니지?"부터,

"70대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개그맨이 두뇌서바이벌 최강자라니...!", "한때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던..."과 같은 이런 류의 표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아니나 다를까" 등의 반전이나 복선을 내포한 채 우리를 가스라이팅한다.


이런 표현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이런 표현은 편협한 사고의 결과라는 것을 우리가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남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사람도 하지 못하는 선행을 베풀어 화제다"라는 말은, 우리 사회가 동남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에게 갖는 기대치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강하게 방증한다. "경연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여심을 사로잡고 있는 남자가 서울 명문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말도 곱씹어 보면 여러 가지 선입견과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열 살 밖에 안된 어린아이가 역사를 많이도 아는구나?", "거의 백 살이 다 되셨는데, 큰 병 없이 정정하시다." 등 이런 표현은 부정적이거나 과하지 않고, 특히 강요하지 않는다. 상태와 기대치 간의 상관관계가 지극히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어른보다 역사를 잘 알기 어렵고, 고령자에게 지병이 있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그 상관관계에 큰 무리가 없다. 반면, "남자애인데도 피아노를 좋아하네?" 이런 표현은 논란을 가져온다. 남자애라는 상태와 피아노에 대한 호불호 간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편견을 기대치로 설정함으로써 칭찬처럼 보이는 문장에 교묘한 강요를 섞었다. 성별과 피아노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동남아 노동자와 선행, 명문대학과 목소리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불편하다고 느낀다.


"너까지 못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 이런 말은 어떤가? 친분을 부당한 기대치로 포장해서 대부분 사람들이 못하거나 하기 싫어하는 일에 대해 감히 거절하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무리한 일을 강요하는 상대방이 도리어 화를 낼 수 있는 명분을 만들면서, 이상하게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하도록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는 정교한 언어적 폭력이다. 곤란한 문제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짊어지게 하려는 불공정한 획책도 숨어있다. 이런 폭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똑같이 부당한 기대치를 적용하면 된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그런 걸 강요해?" 이런 식으로.


"아무리 너라도 이 일은 정말 어려울 것 같지만 맡아주면 고맙겠어."라는 말은 어떤가? 같은 의도로 한 말이지만 무리한 상관관계 형성을 피했고, 책임을 떠넘기거나 불공정한 결과를 이끌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 앞단락의 '너'와 이번 단락의 '너' 모두 '이 일'을 할 수도, 거절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이 일'을 시도할 경우 어떤 '너'가 '이 일'에 성공할 확률이 높을지, 나아가 이 어려운 일을 결국 실패했을 때 어떤 '너'와 그 '너'를 포함한 사회가 보다 성장하게 될지 예측하는 것은 쉽다.


조금 더 잘 듣고 잘 얘기해야 한다. 얼마 전 뉴스에도 잘못된 상관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보도되었다. 한 대학교에서 기숙사 내 흡연에 따른 퇴실조치를 공지하면서 대상자의 국적을 명기한 것이다. 국적과 실내흡연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우리는 불편했고, 그렇게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카이사르가 부루투스에게 뭐라고 얘기했으면 좋았을까? 무슨 말을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겠지만, 만약 카이사르가 부루투스를 진실로 아꼈다면, 차라리 미안하다고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랬다면 부루투스는 평생 카이사르를 그리워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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