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점에 가면 유독 '어른'이라는 단어를 쓰는 책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을 느낀다. 일종의 자기 계발서나 잠언모음 아니면 힘든 현대인을 위로하는 메시지의 에세이 같은 책이 그렇다.
통상 어른은, 나이가 차서 편하게 대하기 어렵다고 인식되는, 성인과 비슷한 의미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른이 들어간 책들을 펼쳐보면 꽤나 어른 되기가 어려워 보인다. 어른이 되려면 그냥 나이만 먹어서는 안 되고, 참는 법과 기다리는 법을 익혀야 한다. 고난을 피하면 안 되고 극복해야 하며, 실패하더라도 좌절하면 안 된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도 안되고, 운전도 잘해야 하고, 군인한테도 예우를 갖춰야 하고, 하여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예전 어른들에 비해 굉장히 늘었다.
그런데 또 맞은편 책을 들춰보면 어른의 자격이 크게 엄격하지도 많다. 모든 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고, 나를 우선 사랑하기를 독려한다. 마음껏 슬퍼해도 되고, 고난을 피해도 되고, 너무 힘들면 안 참아도 되고, 그래도 나는 너보다 소중하다고 한다. 너무 당연한 내용의 책들이 블로그나 릴스에, 마치 대단한 원리를 처음 발견한 것처럼, 열렬히 게재되고, 그런 콘텐츠에 달려있는 감복해마지않는 댓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분명히 변하기는 한 것 같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원인으로 수요와 공급 측면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책들이 계속 공급되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고 결국 수요층이 제법 두텁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거나, 자신이 나이는 많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건설적인 마인드로, 이런 책에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극히 적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은 이미 충분한 어른일 것이고, 어른에게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대부분 책을 가까이하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책들은 상당히 신중하게 고르지 않으면 크게 후회한다는 것을 잘 알것이다.
그 다음으로 '어른'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의도,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어른의 뜻을 확인해 보면, 결혼을 할 만큼 나이를 먹은 사람 정도로 설명할 뿐, 특별한 기준이나 조건은 없다. 그렇지만 요새 유행하는 책들은 어른이 갖춰야 할 역량을 무척이나 폭넓게 정하고 있다. 이제 겨우 학업도 마치고 어른이 되려고 하는 데 뭐가 그리 까탈스럽냐고 반박하고 싶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도 않다. 보통 어른의 자격으로 언급하는 역량들은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과식하지 말고 운동 열심히 하면 날씬해 진다는 다이어트 책이랑 비슷하다. 아무튼 이렇게 어른에 대한 해석을 엄격히 하면, 그냥 밥만 축내다 기어코 되고야 마는 어른이라는 당연한 지위에 끝내 다다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한 마디로 어른의 허들이 높아진다.
그러면 왜 전에는 없던 어른의 자격기준을 만들고 싶어 할까? 전 재산을 기증하고, 온 힘을 다해 헌신해야 비로소 좋은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철 좀 들라는 가스라이팅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어른책과 함께 유행하고 있는 책을 보면 상황이 이해가 된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서양 철학자 분들의 저서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책들이 그런 류인데, 진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무시하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대형서점 자기계발서 코너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 구도는 우리나라의 시장경제가 싱싱하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마치 매운 떡볶이가게 옆 아이스크림 가게처럼, 상반된 주제의 책들이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었다가 아이로 만들었다가 하면서 지갑을 열도록 유인한다.
지금까지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어른책을 멋대로 분석해 보았다. '어른'은 정말 괜찮은 상품성을 갖고 있다. 여기까지 같이 고민해 본 사람들은 이미 알아챘겠지만 어른이 되었다가 말았다가 하는 이 분야에는 충분한 수요가 잠재되어 있다. 선한 사람이 어른이라는 명제는 언뜻 선하지 않은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는 명제로 곡해되고, 굳이 신경쓸 필요 없다는 상반된 주제와 융합하여, 심리적으로 아주 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요컨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격조 있게 깎아내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발명된 것이다. 틀딱, 꼰대, 김여사, MZ 등 비난 전용 어휘들은 비난의 객체뿐만 아니라 사용주체까지 상처를 받는 부작용이 있는데, 어른을 사용한 세련된 비난은 사용자를 단단하게 보호해 준다.
이제 나에게 성실과 신뢰, 배려 같은 성숙한 태도를 기대하는 상대방에게 '당신은 어른이 아니군요.'라고 비난할 수 있게 되었다. MZ나 꼰대 같은 말은, 사용하는 순간 갈등을 조장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듯한 인상을 주어 입에 담자마자 얼굴이 벌개질 수 있지만, 어른을 운운하면 이런 우려가 없다. 어른책을 기준으로 보면 저놈은 어른이 아니다. 저놈이 나를 비난할 경우에는 저명한 철학자 분들의 말씀 에 따라 무시하면 된다. 물론 저놈이 나와 같은 책을 읽었을 경우, 어른 두명이 어른이 아니게 되는데, 서로 무시하면 되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A : "쯧쯧, C는 어른이 아니네."
B: "으이구, C가 너보다 나이가 더 많지 않니?, 그렇게 험담하다가 C가 듣기라도 하면 또 어쩌려구 그래"
A: "하하, 난 그딴 놈 신경도 안 써, 그러네, 나도 어른되려면 멀었지, 큭큭."
이 대화에서 보듯 A는 아무런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없이 C를 모욕할 수 있게 되었다. A가 언급한 두 개의 어른은 철자는 같지만 자격 기준이 다르다. 첫번째 밑줄 친 어른은 겨드랑이에 털만 자라도 자격이 충분하지만, 두번째 밑줄의 어른은 위인이나 영웅 정도의 인성을 갖춰야 다다를 수 있는 어른이다. A를 비판해봐야 A는 책에서 배운대로 다른 사람의 의견은 신경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타격이 없다. 그 의도가 어쨌든 어른책은 새롭고 통쾌한 비난 방법을 제시했고, 저명한 철학자 책은 그 부작용을 깔끔하게 해소해 주었다.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격조있는 욕설의 발명에 환호한다.
이딴 글을 이렇게 장황하게 쓰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어른되려면 멀었다.
P.S. 당연히 두번째 밑줄의 어른이며, 당신께서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