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들르는 목욕탕, 규칙이랄 것까지는 아니지만 나름의 루틴이 있다.
비누샤워 후 사우나에 앉아 모래시계 두 번 정도 땀을 뺀다. 냉탕에서 담금질한 후 다시 사우나에 들어가 한번 더 괴롭히는데, 바로 사우나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온탕에 잠깐 몸을 데워야 땀이 잘 난다. 두 번째 들어가는 사우나는 모래시계 한 번 정도면 딱 좋다. 때를 밀 때는 나중에 아프거나 벌게지지 않도록 이태리타월에 비누거품을 잔뜩 내어 부드럽게 여러 번 문지른다. 지난 목욕 때 왼쪽 팔부터 때를 밀었다면 다음번에는 오른쪽 팔부터, 이런 식으로 완벽한 균형을 위해 세심한 애를 쓴다. 팬티 한 장의 구속마저 벗어나는 그 시간은 정말 자유롭지만, 여느 때보다 약해지는 순간인 만큼 한껏 섬세해진다.
꽤나 아팠던 겨울을 견뎌냈지만, 여전히 추위가 매서운 날이었다. 건강검진 중 발견된 가슴속 돌기를 도려내어 검사해 보니 다행히 양성(良性)이라 확인한 주의 토요일이었고, 수술과 회복을 위해 한 달째 담배를 끊고, 술도 안 하던 터라 뜨겁고 차가운 목욕의 자극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날이었다. 새해 첫 주말이었지만, 주말 오후 두 시라는 어정쩡한 시간에, 겨울비마저 차갑게 내리고 있어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설령 붐빈다 해도 그것 때문에 목욕을 미룰 정도로 너그러운 입장도 아니었다.
다행히 사우나 안은 크게 붐비지 않았고, 간단한 스트레칭쯤은 서로 살이 닿지 않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혼잡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제 두 번째 모래시계가 시작된다. 십 분이 지났으니 곧 땀이 날 것이다. 의외로 사우나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온탕의 혼잡도가 꽤 높았는데, 특히 가장자리 자리를 잡지 못하고 탕 한가운데에 위치한 두 소년의 들썩거림이 불안했다. 열 살은 쉬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그런 소년들은 보통 냉탕에 잠겨있기 마련인데, 어쩐 일인지 뜨거운 온탕에서 번뇌와 싸우고 있었고, 결국 그 일이 시작되었다.
“나가라고!”, 한 소년의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라고!”, 어쩌면 고함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가라고!”, 거의 삼에서 사초 간격으로 계속되는 작고 높은 고함은 매우 교묘했다. 엄연히 고함이었지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기에는 애매할 정도의 볼륨을 유지했고, 그러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한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었다. 게다가 두성을 사용하여, 목에 큰 피로 없이 장기간 반복이 가능한 발성을 구현하였는데, 상당한 경험이 뒷받침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십 초에 두 번 정도의 “나가라고!”를 모래시계 한 번이 조금 안되게 듣고 있었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 응당 탕 밖으로 나가야 할 또 다른 소년은 탕 속에 발 한 짝만 넣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너나 나가.” 정도로 추정되었다. 온탕 속 사내들의 눈빛은 진정 볼 만했다. '조용히 해라' 한 마디면 상황이 종료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고 서로에게 역할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단 일초의 용기만 있으면 될 텐데, 누구도 어린 소년들을 제지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두 번째 모래시계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쯤 알 수 있었다. 온탕 속 사내들이 진정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다른 이에게 미루고 싶었다면 그토록 서로 눈을 맞추지는 않았을 텐데, 그들은 결코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끊임없이 눈을 맞추고 때로는 온탕 밖 사내들과 눈을 맞추기도 했다. 애초 그들은 비겁하게 남탕에서 가져야 할 책임을 게을리하고, 그들을 대표하여 희생할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희생양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언젠가 하마들이 악어를 잔인하게 린치하는 영상을 짧은 동영상으로 본 기억이 있다. 초식을 하는 하마가 먹지도 못할 악어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악어가 새끼하마를 공격하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온탕 속 사내들은 모두 악어였고 아빠하마를 애타게 찾는 중이었다.
두 번째 모래시계가 거의 끝나가고, “나가라고!”가 어떤 과장 없이 백번은 충분히 넘겨서, 하마고 나발이고 당장 저 입을 다물게 해야겠다 싶을 때 즈음, 바로 옆에서 평온하게 양반다리로 앉아있던 아저씨가 갑자기 사우나 문을 열고 “둘 다 나가! 얼른 나가!”하고 얼른 문을 닫았다. 아빠하마가 바로 내 옆에 있었다! 그렇게 새끼하마가 제거되었고, 온탕 안에 충만했던 긴장감도 삽시간에 사라졌다. 새끼하마를 핍박하지 않고 기다려 준 온탕 악어들의 연륜과 지혜에 미소마저 비어져 나왔다.
두 번째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알이 떨어지고, 모래시계 옆 어르신이 헛기침을 하며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사나이의 승부욕과 나이는 정비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한 살이라도 젊은 사내의 의도적 패배는 건강한 남탕을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한 미덕이 된다. 내가 어떤 패배감 없이 그저 루틴에 따라 사우나를 나선 몇 초 후 얼굴이 시뻘건 어르신 두 분이 전혀 급하지 않은 표정으로 황급히 사우나를 나왔고, 나도 어르신들의 승리를 존중하는 의미로 살짝 혀를 내두르는 듯한 추임새를 넣었다. 그렇게 우리는 평화로웠다.
명경지수(明鏡止水), 냉탕의 물은 너무도 맑았고, 작은 출렁임조차 없었다. 냉탕에 설치된 디지털온도계의 숫자는 무려 10이었다. 10도라니! 한 달 전만 해도 22도 정도로 놀기에 딱 좋았었는데, 10도 넘게 떨어졌다. 아까 새끼하마들이 비좁은 온탕에서 서로의 퇴거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이유는 새끼하마들의 문제가 아니라 냉탕 때문이었다. 새끼하마가 서식하기에 그날 냉탕은 너무 차가웠다.
아까도 언급했듯, 나이가 들어도 사나이의 승부욕은 전혀 줄지 않는다. 다만 승부욕을 겉으로 드러내면 오히려 초라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하고, 승리를 돈, 명예, 건강, 멋 등 다양한 가치로 대체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마치 승부욕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특히 사십 대가 꺾이는 시점부터 승부욕은 상당히 정제된 양상을 띠게 되는데, 이쯤 되면 군역과 교육 등 납세(納稅)를 제외한 대부분의 의무가 종료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이라는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책임과 의무는 언뜻 비슷하지만, 그 발단과 인식 측면에서 크게 다르다. 의무는 사회적 약속을 통해 형성된 후 이성을 통해 이행되며, 이행여부만으로 성취도를 판단할 수 있다. 반면에 책임은 양심과 같은 감정이 발단이며, 그 성취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尺度)는 주로 멋으로 대표되는 감성에 의존한다.
지하철의 노약자석을 비워두는 것은 사회적 약속으로서 용기가 필요 없는 의무이므로 멋이 없다. 반면 일반 좌석을 노약자에게 양보하는 것은 책임감에서 비롯된 용기가 이끌어 낸 행동인 만큼 멋이 있다. 누구나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실제 행동까지 하기 위해서는 의외로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여기 앉.....'라고 잘 들리지도 않게 웅얼거리며 자신도 겨우 차지했던 자리를 기꺼이 양보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용기 때문이다. 노약자가 앞에 서 있어도 눈치 보지 않고 않고 끝까지 편하게 왔다는 것보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책임감을 용기 있게 행동으로 구현한 것에 대해 멋있다고 생각하고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이미 온탕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보다 원활한 온탕 이용을 위해서는 오래 있었던 사람들이 나오거나 무릎을 굽혀 자리를 만들어 주는 배려가 필요했지만, 어떤 선택이든 적당히 연식이 된 남자들에게는 패배로 인식된다. 내 자리에 대한 기득권과 이웃에 대한 배려, 두 가치 사이를 갈팡질팡하던 사나이들은 결국 눈을 감아 승부를 피해버린다. 이런 혼탁한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책임감이 필요하다. 온탕 자리의 양보를 패배가 아닌 승리로 여길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만 온탕이 순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금 사우나를 나서서 온 몸에 열기가 충만한 내가 가장 적합했다. 이미 명분은 완성되었고, 나는 그저 마중물이 되면 된다. 제발 용기를 낼 수 있기를, 책임을 다하여 끝내 멋있어지기를. 아무도 들어가 보지 못한 듯한, 너무나 맑게 찰랑이는 미지(未知)의 샘. 극심한 통증이 국부까지 밀려왔지만 눈 뜨고 잠영을 했다. 여느 때보다 깨끗한 수질 덕분에 바닥타일의 메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잘 찾아보면 1급 청정수에만 서식한다는 열목어도 있을 것 같았다. 몇 번이나 뛰쳐나올 뻔했지만 끝내 참았고 결국 한 번의 욕설도 없이 냉탕의 반대편에 닿을 수 있었다. 호흡은 거의 멎었지만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고 책임감에 가득 찬 냉탕 입수는 충분히 멋있었다. 몇몇 사내가 비장한 표정으로 온탕에서 나왔다. 멋진 아빠가 되기 위해, 진짜 사나이가 되기 위해 이제 그들이 냉탕 입수에 도전한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만 상관없다. 도전한 순간, 그들은 이미 승리한 것이다.
그렇게 온탕에 내 자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