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잠들기 전에 토닥이며 자장가를 불러주는 영화 속 장면들, 이런 씬이 앞으로 닥칠 시련의 클리셰로서 영화에 필요하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자장가가 실제로 있다거나, 자장가를 부르면 아기가 잠든다는 아이디어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김대리, 이제 출산했으니 자장가 연습도 해야겠네?", "저 노래는! 아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자주 불러주시던 자장가예요!" 이런 말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간의 육아 경험과 수많은 선후배 아빠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자장가는 없다. 졸린 아기를 눕혀 놓고 툭툭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재운다는, 소위 자장자장 따위의 것들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경우, 아기는 가능한 한 빨리 자장가를 멈추기 위하여 그 작은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 목이 터져라 울 뿐만 아니라 기껏 먹인 분유를 뿜어내면서 자장가를 저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내 아이가 유독 노래에 예민하거나 내가 지독한 음치라 그런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자장가는 없다. 능숙한 부모는 절대 아기를 재우기 위해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아기를 재우기 위해서는 노래보다 답답한 구속과 다소 규칙적인 진동이 필요하다. 가끔 백화점이나 카페 같은 데서 부모가 아기를 두들기며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상당한 노하우가 집적된 동작이므로 어쩌다 볼 기회가 있으면 유심히 살펴보자. 앞뒤로 골반을 부드럽게 흔들면서, 무릎으로 위아래로 출렁이며 살살 진동을 가하는 한편, 아기를 꽉 끌어안은 팔은 다소 아기가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아무튼 부모만 아는 그런 세기로 구속하고 있다. 게다가 적당한 리듬에 따라 아기 엉덩이를 가볍게 충격하는데, 이렇게 적절한 진동과 구속이 아기의 수면에 꼭 필요하다.
차라리 자장가(歌)보다는 자장무(舞)가 현실적인데, 왜 자장가란 말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간혹 신호가 잡히지 않은 텔레비전 잡음소리나, 수돗물 소리 같은 소음이 아기를 재우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노래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아기가 자라서 스스로 잠들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적절한 배경음악이 원활한 취침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오십을 바라보는 아저씨가 되면서 조금씩 알 것 같다. 요새는 어쩌다 아기를 보면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다. 두 아이를 출산한 후 다시는 못하겠다고 했던 와이프도, 육아에 지쳐 둘째를 낳자마자 정관수술을 감행했던 나도, 마흔 중반을 넘기면서 변했다. 소위 '백일의 기적'을 기다리고, 매주 어린이집에서 얻어 온 새로운 질병으로 소아과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던 괴로운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행복했던 일만 기억에 남았다. 그 기억을 더듬어 보면 컴컴한 새벽에, 거실에서 잠든 아기를 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던 그때, 무언가 흥얼거렸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영원한 영웅이자 형님이신 김민종의 노래였다. 지금도 웬만하면 노래방에서 화면을 전혀 보지 않고 끝까지 부를 수 있다.
자장가는 사실 아기를 재우기 위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잠든 아기를 끌어안고 밤새 지친 몸을 추스르며 흥얼거리던 노래다. 육아에 지쳐서 저절로 쏟아지던 노동요였고 내가 잘 재우고 있으니 여보 당신이라도 얼른 눈 붙이고 힘내라고 부르던 응원가였다. 그렇지만 중년이 된 나에게 누군가가, 아기를 키울 때 너무 힘들어서 노래까지 부르던데, 그렇게 힘들더냐고 물어본다면, 그 노래는 힘들어서 부른 노동요 따위가 아니라 제 아이가 잘 자라고 불러준 자장가입니다라고 둘러댈 것이다.
요컨대 자장가는 가짜지만, 부모들이 아이를 재울 때 자장가를 부른다는 것은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