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

by 김과장

면도를 하다가 문득 거울 속에서 아버지를 봤다. 난 어머니를 닮았는데, 아버지는 하나도 안 닮았는데, 언뜻언뜻 지나치는 얼굴에 아버지가 있다. 깜짝 놀라서 아내에게 말했더니 여태 몰랐냐고, 닮아도 정말 많이 닮았다고 퉁퉁 거린다.


아버지는 남보다 일찍 지쳤고, 첫 손주가 6살이 되는 겨울,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게 된 해에 생을 마무리하셨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아버지는 너무 착해서 형들보다 더 일찍 취업해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공부도 엄청 잘하고 잘 생겼는데, 공부 못하는 형들 억지로 대학 보내느라 집에 돈이 없었다고, 그래서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시절 흔하던 사우디 다녀온 건설근로자였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모래밥 먹으며 보내준 돈이라며 악착같이 모으셨다. 아버지가 사우디에서 일하는 동안 우리 세가족은 큰집에 얹혀 살았다. 우리 형제는 어린 시절, 아버지보다 큰아버지를 더 따랐고, 어쩌다 아버지가 귀국하면 큰아버지 품에서 아버지를 낯설게 쳐다보곤 했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 가족은 그립고 억척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내가 기억을 할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무렵, 서울 외진 귀퉁이의 양옥에 자가로 거주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말단 기술자로 입사하셨지만, 종국에는 거의 임원급까지 승진하였다. 담당하는 현장에 일하는 노무자가 수십, 수백 명이다 보니, 가끔 아버지가 계시는 지방현장에 들르면 동네 상인들이 와서 용돈을 쥐어주기도 했다. 아버지 현장의 함바집에서 구매하는 식재료만으로도 지역경제가 들썩할 정도라고 하면 약간은 과장이겠지만, 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신다.


서울에 있는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늘 사촌형들 옷을 얻어입었는데, 아버지가 혀를 차시며 백화점에 가족을 데려갔다. 아버지가 내 옷을 골라주다가 점원에게 조용하게 말을 건네셨다.

"옷이 괜찮아 보이는데, 많이도 팔아요?"

점원은 웃으며 "한 벌만 구입하셔도 감사하죠."라고 대답했고,

아버지는 "한 백 벌도 돼요?"하고 또 물으셨다. 나는 무슨 이런 재미없는 농담을 계속 하시나 했는데, 아버지의 표정을 살피던 점원은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짓더니 어디론가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날 아버지는 해당 브랜드 본사와 직접 통화하시면서 건설근로자들의 유니폼을 주문했고, 내 옷 한 벌은 그냥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일찍 지칠만 했다. 주변에서도 기대가 커 보였고, 무엇보다 말에 힘이 있었다. 가볍게 몇 마디 하실 만도 한데, 아버지는 정말 말씀이 적고 무거웠다. 내가 들어본 아버지 말씀 중에 그냥 웃고 넘길 만한 가벼운 말은 별로 기억이 없다. 맥주랑 사이다를 반씩 섞어 마시면 그렇게 시원하더라, 너 짜파게티 진짜 잘 끓이는구나, 정도만 기억이 난다. 항상 말에서 힘이 느껴지곤 했는데, 그런 부분이 회사생활을 할 때 유리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아랫사람들은 그 백화점 점원처럼 바짝 긴장을 하곤 했을 것이다.


"아빠는 너 믿는다." 평생 주말부부를 면치 못했던 아버지가 월요일 새벽 집을 나서며 조용히 건네던 이 말이 참 무섭고 무거웠다. 얼마나 무거운지 남들 다 가는 오락실 한 번을 편하게 가지 못했다. 어머니가 편식하거나 밥을 남기면 집에 성인남자가 없다는 걸 들키니까 항상 밥을 잘 먹어야 한다고 말씀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아버지는 그저 믿는다고만 하셨는데, 아버지가 출장가신 사이 나는 반찬을 조금 남겼고 집에 도둑이 들었다. 반찬을 남기는 바람에 아버지가 집에 없다는 것을 들켜 집이 털렸다는 합리적 추론이 불가피했다. 처음 도둑이 들었던 날, 편식하지 말자고, 밥 남기지 말자고 네 살배기 남동생을 부둥켜안고 어머니 몰래 흐느끼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도 세 번 정도 밤손님이 방문하셨고, 심지어 한 번은 현장검거까지 하면서 나와 동생은 편식을 하지 않고 밥도 남기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의 믿는다는 한마디가 그렇게 무거웠다.


내가 유난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겪은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공감하는 부분이다. 한 번은 명절에 사촌형이 평소 섭섭한 것이 많았는지 술을 드시고 거실에서 큰아버지와 다투고 있었다. 큰아버지가 나무랄수록 더 심하게 대들면서 분위기가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그때 거실 구석에서 텔레비전을 보시던 아버지가 "뉴스 좀 보게 조용해라."라고 잘 들리지도 않게 한 마디 하셨는데, 사촌형이 민망할 정도로 빠르게 바짝 엎드리며 아버지에게 잘못했다고 하셨다. 사람이 무릎 꿇고 비는 것을 실제로 본 것이 처음이라 기억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다. 당연히 사촌형은 용서를 받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한 순간 술이 확 깨고, 잘못하면 죽겠구나 싶었다고, 정말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가 매주 출장을 가면서 나를 믿는다고 하셨고,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도 고지식하다는 말을 듣는다.


말 한마디에도 그토록 힘이 실리니 에너지를 금방 다 써서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나 보다. 가끔 맥주에 사이다를 섞어 먹는다. 회사 동료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골프장에서 먹는 방식이라고 골프 치냐고 묻는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우리 아버지 골프 좋아하셨구나. 오늘 아침에도 거울 속 아버지를 흘긋 봤다. 동그랗게 잘 자라고 있는 곧 고등학생이 되는 첫째에게 한껏 힘을 실어 얘기했다.

"딸, 아빠는 우리 딸 믿는다."

첫째가 주머니에 있던 사탕 껍데기를 내 손에 쥐어주며 대답했다.

"나도 아빠 믿어."

나는 오래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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