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녀석이 이발을 하고 오더니, "미용실 아줌마가 다음부터는 예약하고 오래." 그런다. 혹시 예약을 안 해서 혼이 났나 싶어서 아들녀석 표정을 살펴보니 그런건 아닌 것 같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원래 남학생 헤어컷은 간단하니까 예약을 안 받고 다른 손님 염색이나 펌 하는 시간에 잽싸게 해결해 오셨는데, 아들놈 머리는 숱이 워낙 많고 두꺼워서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예약이 필요하다고 했다는 거다. 학창시절이 흑백사진처럼 떠오른다. 아들녀석이 어쩌다 그런 것까지 닮았는지 괜히 미안하다.
요새는 이발소가 거의 없고, 멋쟁이 남성을 겨냥한 바버샵 또는 남자 사우나 안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도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장원이라는 공식이 남아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자주 갔던 이발소는 단골 중국집 옆에 있었다. 이발을 하다가 짜장면 냄새를 맡으면 얼마나 군침이 돌던지 아직도 그 향이 코끝에 남아있는 것 같다.
흰색 가운을 입은 이발사 아저씨는 담배를 피우셨다. 이발을 하다가 앞머리를 깎느라 아저씨와 마주하면 살짝 담배냄새가 풍겨왔는데, 그 냄새가 그렇게 역하지는 않았다. 옛날 담배는 조금 향기롭던 것인지, 기억이 왜곡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발의자 두개와 세면대 정도가 있었는데, 이발의자 한개는 아저씨가 앉아서 티비를 보는 자리였고, 나머지 한개만 남학생들이 사용했다. 가끔 어른손님이 오면 어떤 아주머니가 오셔서 똑똑 소리를 내면서 안마를 해주셨는데 매우 신기하고 드문 일이었다. 대부분은 이발사 아저씨와 시커먼 남학생들로 이발소가 꽉 차있었다.
남자들만 북적이다 보니 분위기도 거의 군대와 비슷했다. 학교폭력이라는 어휘 자체가 없던 시절이다 보니 고등학생들은 입이 걸었고, 그런 고등학생들을 차례대로 앉히고 머리를 밀어야 하는 이발소 아저씨도 걸핏하면 욕설을 섞어 말씀하시곤 했는데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스프링이 걸린 문을 찌거덩 열고 들어가면, 비누향에 씻긴 옅은 담배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고, 시커면 밤송이들의 시선이 온몸을 찌르다 빠르게 사라졌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긴 소파의자에 구겨 앉아서 만화책을 봤다. 로토의 문장, 북두의 권, 드래곤볼 등 일본 만화책이 많았는데 야한 그림이 있는 페이지를 시커먼 녀석들이 다 뜯어가서 내용이 잘 이어지진 않았다. 그래도 거짓말 조금 보태면 한 열 번씩은 봤던 터라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발소 아저씨가 손님들의 대기순서를 외우고 계신데, 가끔 순서가 바뀌기도 한다. 저항은 무의미했고, 그 분이 정해주신 대로 해야만 했다. 돌이켜 보면 불가피한 시스템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분위기에서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어린 학생들은 동네 형님들한테 순서를 뺏기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또한 이발소 아저씨는 학생에게 스타일을 용납하지 않았다. 간혹 앞머리 길게, 구레나룻 남기고 등의 주문을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아저씨는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깎아놓고서는 앞머리 길게 했다, 구레나룻 남겼다 이런 식으로 커트의 결과를 해석해주셨다. 그러면 또 희한하게 그 학생은 흡족해 했다.
이발을 마치면 아저씨가 머리를 감겨주시는 데, 세면대에 머리를 숙이게 한 뒤 다이알이라는 비누로 빡빡머리를 손톱으로 박박 감겨주셨다. 내가 뭘 잘못했거나, 기분이 안 좋으신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박박 감겨주셨는데 나중에 적응이 되면 그 화끈하고 시원한 맛에 이발하는 날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다이알은 외국비누였는데, 그 때 학생들 사이에 여드름에 좋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비누로 씻으면 기름기 하나 없이 빠드득 소리가 나도록 씻긴다. 그 비누로 세수를 하면 개기름이 넘쳐흐르는 남학생도 잠깐 피부가 당길 정도로 얼굴이 담백해졌다. 아무튼 이 비누로 두번 감겨주시는데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손톱으로 머리를 박박 감겨주시다 보니 두피에 난 여드름이 터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가끔 젖은머리로 의자에 앉은 녀석들의 이마로 여드름 핏물이 흘러내리곤 했다. 그럴때면 학생은 말없이 맨손으로 이마의 핏물을 훔치고, 아저씨는 무표정하게 손톱을 정비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척 잔인했던 것 같은데 역시 아무도 문제삼는 이가 없었다.
이제 내 얘기를 해보면, 아저씨는 매번 내 순서를 뒤로 미루셨다. 나름 내 순서라 생각해서 대기석에서 일어나면 '안돼 넌 짱구야'라고 하셨다. 긴 기다림 끝에 내 머리를 손질하실 때면 바리깡을 툭툭 치고, 가위날을 다시 만지시면서 머리가 안 깎인다고 하셨다. 머리가 얼마나 억세고 굵은 지 아저씨는 이발을 하다가 손가락을 풀기도 하셨고, 눈에 머리카락이 자꾸 튀어서 나지막하게 욕을 하기도 하셨다. 겨우 머리를 깎고 나면 머리를 얼마나 세게 감기시는지 이마를 세면대에 박을까봐 매번 목에 힘을 꽉 줘야 했다. "아이구 힘들어, 이놈의 짱구, 이놈의 왕머리" 하시면서 머리를 감겨주시는데 어린 마음에 참 무안하고 섭섭했다.
고3 수험생활에 지친 어느 날, 덥수룩해진 머리를 정비하러 이발소에 들렀다. 다행히 이발소에 다른 손님이 없어서 바로 이발을 할 수 있었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에 매진하던 터라 정말 피곤한 중에 사각거리는 가위소리는 정말 달콤했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얼마나 졸았을까? 문득 눈을 떠보니 아저씨가 옆의 의자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머리를 흔들어 대면 못 깎지. 그러다가 귀때기 짤려" 하고 살짝 협박을 하시면서, 아저씨는 다시 가위를 잡았다. 사각 사각 이발이 시작되고, 다시 의식을 잃으려는 찰나, "벌써 고3이야? 수능이 언제야?"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면서 내 졸음을 쫓아주셨다. "네가 우리 이발소에 오는 애들 중에 머리가 제일 커, 공부 잘 해?" 하시면서 놀림 반 격려 반 하시는데, 아마 단연코 이발소 아저씨와 가장 많이 대화한 사람 중에 한 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이발을 마치고 이발소를 나서는데 바깥이 어둑어둑 했다. 깜짝 놀라서 시계를 봤더니, 한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보통 15분이면 충분한데, 30분 넘게 졸고 있는 걸 깨우지 않고 기다려 주신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 된 후로는 미용실에 다녔다. 군대에 다녀 온 사이 이발소는 없어졌고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할 때 즈음해서 중국집도 문을 닫았다.
고슴도치 같이 비죽비죽한 머리를 한 아들녀석이 오늘 저녁은 짜장면이 좋겠다고 한다. 동감이다. 졸고 있는 고등학생을 묵묵히 기다려주던 이발소 아저씨의 가위질처럼, 나도 이제는 아들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 깎아도 깎아도 다시 솟구치는 그 정직하고 고집 센 머리카락처럼, 아들이 세상의 어떤 풍파에도 기죽지 않고 성장하기를 바란다. 미용실 아줌마에게 미리 예약하고 오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예사롭지 않은 녀석의 머리카락이, 훗날 녀석이 세상을 살아가는 든든한 고집과 힘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젓가락을 든 아들의 손목에 힘이 잔뜩 실리는 걸 보니, 짜장면이 좋긴 한가보다. 정말 아빠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