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깍이 유학생 이야기 1

by 벅햄

미국 유학.


설레면서도,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한 네 글자이다.

대학시절 누구나 유럽여행과 미국여행, 그리고 해외 유학생활을 꿈꿔봤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생활과 월급.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의 탄생.

이것들은 삶을 안정시켜주는 닻과 같지만,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에 부담을 주는 걸쇠가 되기도 한다.


남자나 여자나 누구나 모두에게나.


하지만 그럼에도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 아내와 너무나 어여쁜 아이와 함께.





강남.

학원을 등록하기 위해 강남에 갔다.

대학 그리고 대학원 시절 강남은 나에게 다양한 정서적 경험을 주는 공간이었다.

친구들과 생일을 보내기 위해 방문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술 한잔을 위해 방문하기도 하고,

과거, 사랑의 교회가 빨간 벽돌의 건물일 땐, 평일 저녁즈음 다짜고짜 찾아가 마음의 위로 한 줌을 얻기 위해 찾아가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과거엔 사람들과 걷는 방향이 같았다. 퇴근 길 인파 속에 나도 하나였다.

그땐 보이지 않았다. 나와 반댓 방향으로 걷는 사람을.

하지만 이젠 반대로 걷는다.


회사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회사와 반대 방향을 향해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머릿속에 다양한 생각들이 만들어 내는 기분이 묘했다.

거친 회사의 경쟁을 뒤로하고, 다시 온실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

아니면, 그냥 내가 더 잘하지 못해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기분.

이 유학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채 실패자가 될 것 같은 기분.

난 뭐하고 있는 것일까?


나? 나는 아기와 아내를 집에 두고, 새벽부터 학원을 가는 아저씨.





푸념하지 말고,

학원 개강하기 전 미리 학원에 가서 교재와 필요한 것들을 구매해보자.


학원 입구에서부터 북적북적 거린다.

등록은 온라인으로 했으니, 교재를 사야하는데 강사님마다 부교재를 구입해야 한다는군?

도대체 부교재는 어디서 사는 것이며, 이 아저씨에게 친절을 베풀 사람은 하나 없을까?


사회생활하며 얻은 눈치 밥으로 이곳 저곳을 살펴보다 나와 같은 학원에 다니는 수강생 뒤를 쫓아

긴 줄 뒤에 자리 잡아 선다.

할일도 없고, 책을 보기도 어려우니 괜히 스마트폰을 본다.

페이스북 피드도 지겹다. 본 것을 또 보고 또 본다.

차라리 유튜브를 볼까?

유튜브 15분짜리 영상 2-3개쯤 보니 이것도 지겹다.

줄은 언제 줄어 들지?


마치 내가 해야 할 일이 계속 남아 있는 것 처럼.

내 앞에 사람들의 줄은 줄어 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부교재를 만들고 판매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 사람들의 일거리 중 하나일 뿐이겠지.

드디어 부교재도 구입하고,

이제 시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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