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깍이 유학생 이야기 2

by 벅햄

밤에 집에 와서, 책들을 놓고 생각에 빠진다.

예전에도 이렇게 학원을 다니며 공부한 적이 있다. 대학원 입학을 위해 토익,토플,텝스 중 한 가지 점수를 제출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중 진입장벽이 낮다고 전해들은 토익학원을 두 달 다녔다.

방학을 했지만, 집에 가지 못하고 고시원에 등록을 했다.

저녁시간 식당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이렇게 하면 저녁 식사는 그래도 식당에서 주는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었다.

아침은 고시원 밥솥에 있는 밥과 주먹밥 김가루, 멸치와 견과류 조림으로 대충 만든 주먹밥을 먹고, 점심은 맥도날드 런치 세트를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먹었다. 매일 햄버거를 먹다보니, 나중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돈까스나 다른 음식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저녁은 아르바이트 시작 전에 주는 주방이모의 특식을 먹으며 살았다.

점심과 밤 시간엔 공부하고, 아침엔 학원에 갔다. 그래도 부담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몫을 오롯이 혼자 감내하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순간. 혼자 감내하는 것은 사라진다. 나는 더 이상 나로 존재하기 어렵다.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남편이자 아빠로 존재하게 된다. 내 인식 속 나는 나이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더 이상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나라는 존재는 다양한 관찰자에의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절실해진다. 자존심도 살짝 걸린다. 유학을 하겠다는 말은 겉으로는 멋있어 보이지만, 막상 그 준비과정은 절실과 비참 그리고 물러설 수 없다는 위기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아이와 아내가 잠든 뒤 공부방으로 들어가 혼자 불을 켜고 단어를 외우고, 다시 문법공부를 한다.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영어의 뒤꿈치를 잡는 심정으로 영어 듣기 훈련을 한다.

아침 지하철 속에서 다들 핸드폰을 보거나 읽고 싶은 것들을 읽지만, 나는 단어책을 무릎에 펴 놓는다.


읽고, 쓰고, 듣고, 쓰고, 말하고.




학원에서의 수업이 시작된다. 영어 강사님은 사진과는 조금 달랐지만, 인생사 다 그런 것 아닌가.

나도 면접서류의 사진과 실물이 다르듯,


영어 강사님은 앞에 앉은 친구들이 낯익은 듯 가벼운 농담과 함께 수업을 시작한다.

미리 준비해오지 않으면, 당최 무슨 말인지 알수가 없다. 수업시간엔 영어에 대해 알려주긴 하지만, 미리 공부해오지 않는 자는 주워담기도 어려운 시간이다.


다들 이렇게 살았나 보다. 나는 편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복습과 예습을 하기로 다짐한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차라리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인지 나처럼 멀뚱멀뚱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 스터디 그룹 모임 시간이다.




스터디 모임에 가보니, 역시 젊다. 30이 넘은 나이에 토플을 공부하러 온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하더라도, 스터디 모임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해야한다. 스피킹 연습도 필요하고, 단어 시험을 억지로라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꼰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모임을 하며, 이 나이에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이 들자. 이거야 말로 꼰대의 생각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꼰대였다.

20대 친구들의 열정과 그들과의 실력차가 느껴질 때면, 무언가 숨겨야 할 것을 들킨 것 마냥, 부끄러웠고, 창피했다. 30대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20대 시절 계속해서 배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학회와 다양한 모임을 통해 나는 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었다.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물론 쉽지 않았지만, 열심히 하면서 더 이상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거늘, 30이 넘은 나이에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왠지 모를 낯뜨거움이 스스로에게 있었다.

이런 마음은 빨리 잊자.

이런 마음이야 말로, 스스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만심과 허영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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