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바다를 자주 보러 가는 편은 아니다.
마음속에 늘 바다가 있지만 생활은 언제나 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바다는 늘 ‘언젠가’의 대상이었다.
그 언젠가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찾아왔다.
강릉에 가자고 했다. 당일치기로 말이다.
왕복 500km라는 거리를 듣고 잠깐 망설였지만
곧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함께 차를 타고 오래 달리는 모습이었다.
가서 무엇을 할지보다 그 시간 자체가 더 기대됐다.
바다를 보러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고
굳이 계획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강릉으로 향하는 길.
우리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길고 멀게 느껴졌을 여정은 어느새 한 뼘 거리처럼 짧아져 있었다.
가는 길에 들른 막국수집은 유명하다고 했지만
기억에 남을 만큼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그와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진 찍기 좋은 길이 있다며 잠시 방향을 틀었고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날은 굳이 모든 선택에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함께 있음 자체가 이미 충분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강릉이었다.
바다는 생각했던 것처럼 넓고 푸르렀다.
바다 앞에 서 있으니 그제야 여행을 왔다는 실감이 났다.
한참을 바라본 뒤 카페에 들어가
순두부 젤라또를 먹으며 쉬었다.
창가에 앉아 있다가 나는 무심코 말했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해.”
그는 휴대폰 화면을 넘기며 웃었다.
"다음에 어디 갈지 열심히 찾아본 보람이 있네."
그 말에 웃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이 시간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를.
그는 계속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디로 갈지, 언제 움직일지, 무엇을 볼지를 살피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지금 이 시간을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날의 여유는 우연이 아니었다.
옆에서 다음 걸음을 챙기는 사람이 있었기에
나는 멈춰 서도 괜찮았다.
강릉의 바다는 분명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떠올려지는 것은 바다의 색이나 풍경이 아니다.
어디로 갈지 자연스럽게 맞춰지던 걸음,
말하지 않아도 다음을 준비하던 그의 모습이다.
사랑은 감정이 커서만 오래 가는 건 아니고
옆에서 다음을 살피는 사람이 있어
그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을 때
계속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바다 앞에서 처음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