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사서 놀러 가는 길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오빠의 옆모습이 괜히 멋있어 보여서 별 생각 없이 말했다.
“난 오빠가 빚이 100억이 있어도 오빠라서 좋았을 거야.”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진심이었다.
인생에 무슨 일이 닥쳐도 함께라면 어떻게든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나름 큰 고백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단단한 사람이고 생각보다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빠는 잠깐 머뭇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건 이미 그렇지 않다는 걸 아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
아, 정말.
나는 감정을 꺼냈고 오빠는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참 실용적인 사람이다.
그래도 나는 자신있었다. 정말로 함께라면 어떤 역경도 견딜 수 있다.
돈 문제든, 인생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버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말이다.
그 정도의 각오는 이미 마음속에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00억 빚은 용납되는데
그보다 훨씬 사소한 건 잘 안 된다.
바로 내 말을 듣지 않은 것처럼 행동할 때다.
물론 오빠는 정말 못 들었다고 한다.
운전에 집중하느라 생각이 많아서 혹은 그냥이다.
그 말도 맞다. 이해한다. 나도 가끔 사람 말을 흘려듣는다.
그래도 서운하다.
나라가 망해도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내가 방금 한 말은 못 들었다고 할 때
왠지 '나는 지금 우선순위가 아니었구나'처럼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꽤 웃긴 일이다. 나는 100억 빚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내가 한 말 한 문장이 허공에 떨어지는 건 유난히 견디기 어렵다.
인생 최대 위기는 같이 넘길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말 한 번 흘려들었다는 사실 앞에서는 마음이 생각보다 쉽게 쪼그라든다.
그래서 가끔 상상해본다.
혹시 정말로 100억 빚이 생긴다면
나는 가계부를 쓰고 오빠는 반성문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그 상황에서도 나는 결국 이걸 먼저 묻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까 내가 한 말은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