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려던 어느 날, 정말 오랜만에 소개팅이 들어왔다.
딱히 기대도 없었고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을 닫은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한 번쯤 다시 나가봐도 되지 않을까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사실 그 전부터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듣고 있긴 했다.
키가 크다, 잘생겼다, 성격이 괜찮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지막에는
늘 “이미 결혼했다더라”라는 말이 붙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던 사람.
그런데 그게 오해였고 미혼에 여자친구도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소개가 이루어졌다.
사진으로 먼저 얼굴을 봤다.
솔직히 말하면 인상이 조금 차가워 보였다.
나는 따뜻한 사람에게 끌리는 편이라 괜히 마음이 앞서 걱정부터 됐다.
비가 정말 많이 오던 날 복잡한 마음으로 처음 만났다.
장소는 서로 사는 곳의 딱 중간 지점.
이성적으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마음은 살짝 서운했다.
소개팅을 할 때면 으레 상대가 내 쪽으로 와주곤 했으니까.
‘별것 아니야’라고 넘기려 했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내 마음이 예민해져 있다는 증거였다.
게다가 나보다 늦게 도착했다.
몇 분 차이였을 뿐인데 기다리는 동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마지못해 나온 건 아닐까,
그냥 예의상 나온 건 아닐까.
그리고 드디어 마주했다.
사진 속에서 느껴졌던 차가움은 없었다.
한여름인데도 긴팔을 입고 와서는 덥다며 멋쩍게 웃던 사람.
그 모습이 조금 의외였고 그래서인지 마음이 아주 조금 풀렸다.
우리가 간 곳은 갈비 쌀국수가 유명한 식당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메뉴가 품절이었다.
순간 ‘이렇게 시작부터 안 맞나’ 싶다가도
초면에 갈비 뜯는 모습이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 묘하게 안도했다.
어색함은 있었지만 대화는 생각보다 잘 이어졌고
침묵이 길어지지는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책 이야기였다.
내가 얼마 전 읽고 한동안 마음에 남아 있던 책을
그 사람도 읽었다는 사실.
책을 읽으며 느낀 비슷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나눴다.
그 순간만큼은 소개팅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나쁘지 않은 시작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