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치와 대상포진

썩어버린 건 치아가 아니라

by 진망구스

어릴 때 했던 치아 교정 때문인지, 그냥 선천적으로 잇몸과 치아가 약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잇몸과 치아가 굉장히 부실하다. 남들이 먹을 수 있는 걸 못 먹거나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치과를 갈 때마다 치과 선생님들은 게임 속 npc가 내준 퀘스트를 개고생 해가며 겨우 완수해 가니 또 다른 퀘스트를 내주는 것 마냥 다른 이유로 다음 검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충치 치료는 잘 끝났고요, 끝났는데 잇몸 한쪽이 완전히 내려가 있네요? 잇몸 이식 수술을 안 하고 내버려 두면 나중에 치아가 쉽게 흔들리고 빠질 수가 있어요, 잇몸 이식 수술은 입천장 한쪽을 잘라내어..."

"이식된 잇몸은 자리 잘 잡은 것 같고 부기도 금방 빠질 거예요. 그런데 아래 치아의 뿌리 부분 뼈가 굉장히 얇네요, 뼈이식을 해야..."


'씨발'

"네 네 선생님.. 다음에 전화로 예약 접수하고 다시 올게요"


솔직히 처음에는 '치과도 덤탱이 씌운다는 말이 있던데.. 염병 이거 다 사기 치는 거 아냐?'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제 몸은 제가 제일 잘 안다고 내 입안이 무언가 단단히 잘못돼가고 있다는 것은 내가 제일 먼저 느꼈기에 치과 선생님들의 무한 퀘스트를 군말 없이 수락했다. 내가 무한 퀘스트를 끊어낸 것은 잇몸 이식 수술이 끝나고 뼈이식 수술을 권고받았을 때인데,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5년 전 잇몸 이식 수술로 인한 약 4주간의 반강제적 금연 기간 때문에 받은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생각보다 너무 불편했던 잇몸 이식 수술의 기억 때문인지 평소답지 않게 치과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소리 없는 아우성.


'안 합니다 안 해요 안 해 안 해 이 씨발 안 한다고!'

...

"다음에 전화로 예약..."


그리고 약 5년간 1년에 한두 번 받는 교정기 정기 검진과 스케일링을 제외하고 치과에 가는 일은 없었다. 이제는 뭐 좆되면 좆되는 거지 같은 생각으로 이 나이에 벌써 찬 물을 마시면 이가 시리거나, 질기거나 딱딱한 것은 앞니로 씹지 않게 되는 등의 현상을 애써 외면해가며 살아오다가 마침내 치과행을 결정했던 이유는 뜬금없지만 대상포진이었다. 얼마 전부터 치통인지, 얼굴 오른쪽 면 안쪽이 아프더니 염증이 생겼나 귀 주변이 붓고 뺨에 두 곳이 갑자기 물집 같은 게 생겼다. 대상포진이라고는 아예 생각을 못하고 혹시 스케일링할 때마다 충치가 계속 늘어난다는 치과 선생님들의 의견을 무시하다가 거기서 염증이 시작됐나? 하는 전혀 의학적 지식에 기초하지 않은 생각을 하며 치과로 향했다. 이왕 간 김에 스케일링부터 하려고 하니 스케일링을 하면 피가 조금 나서 충치 치료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충치 치료는 다른 날 하라는 말씀. 다른 날로 충치 치료를 예약하고 치과를 나오는 길에 혹시나 해 집 앞 병원을 가보니 이게 뭔 소리야, 대상포진이란다.


"무조건 쉬셔야 해요. 요새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코로나 땜에 학교 안 가서 하루에 열 시간도 더 자는데요..라는 말을 삼키며


"예? 아 예예.. 그 혹시 뭐 온라인 강의 이런 것 때문에 컴퓨터를 전보다 훨씬 많이 보는데 그게 문제일까요 선생님?"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한숨 쉬는 서장훈 표정을 한 채

"이유가 뭐가 됐든 몸이 전보다 피로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무조건 쉬시고 약 잘 드세요"


어쨌든 대상포진이 났고, 약을 처방받기까지 '그래서 내 몸은 피곤한 것인가 피곤하지 않은 것인가' 따위는 전혀 중요한 것도 아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잘 쉬고 있지만 의사 선생님께


"예.. 제가 한번 무조건 쉬어볼게요 선생님.."




그리고 충치 치료 날이 되어 치과에 갔다. 전에 치료 계획 중 첫 번째 오른쪽 위 충치 치료. 총 130만 원대의 치료 비용 중 약 30만 원 정도의 치료를 하러 들어갔다. 치과를 하도 자주 가서 그런지 무서워한다거나 쪼는 건 없고 그냥 이번에는 또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하고 자리에 누웠다. 물 튀기지 말라고 얼굴에 덮어주는 초록색 천? 을 얼굴에 덮으면서, sns에 떠도는 미용사들의 농담이 생각났다. 머리를 감겨주면서 잘생겼으면 수건을 얼굴에 덮지 않고, 못생겼으면 수건으로 얼굴을 전부 가리도록 덮어버리는 일명 덮손님이라 칭한다는 시덥잖지만 뼈가 있는 농담. 하루에도 수많은 손님을 받는 그들에겐 농담이 아니겠지만 '덮손님'에 속하는 내 입장에서는 괜히 쓸쓸하게 속으로 '그냥 아예 얼굴에 물 바가지째로 부어주셔도 괜찮은데..' 하고 만다.


본격적으로 충치 치료가 시작되고 입 안에서는 무슨 공사라도 하는 마냥 별별 소리가 나 뇌를 울렸다. 이때 특유의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치과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면 '시큰시큰하다'는 느낌이고, 실제로 내가 느낀 느낌은 찌릿 과 짜릿 과 저릿 그 어딘가에 있는 느낌인데 정확히 표현은 못하겠지만 아픈 건 또 아니고.. 불쾌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입술이 터지도록 아-를 하며 혼자 찔끔 찔끔 움찔하고 있는데 이 새끼 좆됐네.. 하는 듯한 치과 선생님의 한숨 섞인 혼잣말이 들려왔다.


"허.. 옆까지 먹었네 이거.."

충치 치아가 파고 들어가니 보이는 것 말고 옆 치아까지 충치가 됐다, 치료 계획이 좀 변할 것 같다, 우선 지금 보인 옆 치아까지 치료해야 할 것 같은데 가격이 더 들어갈 것 같다 등등 선생님의 말씀.


선생님, 이미 치아를 다 뚫어놓으셨는데 저한테 선택권이 있긴 한가요?


"아- (예?) 아아아-(됐으니까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


치료를 마치고 나왔는데 35만 원 정도의 치료비에서 치료 과정이 변경되면서 금니 두 개, 치아색 보정물? 하나 정도로 추가되어 82만 원이란다.


'...인생...'

"예? 82만 원요? 아.. 코로나 땜에 금값이 많이 올랐나 보네요..ㅋㅋ.. 여기요.."

개 병신 같은 멘트를 날리며 엄마한테 '충치 오늘은 30만 원? 정도만 결제하면 되는데 카드 좀요' 하고 받은 카드를 건넸다.

엄마, 1년 있으면 졸업하니까 빨리 취업해서 이것저것 다 갚을게.



새삼 말할 것도 없이 누구나 다 알겠지만,

제발! 치과는 그냥 좀 가라 제발! 130만 원에 해결될 것이 2년 정도 외면했다고 260만 원이 되어있더라. 물론 미래에 임플란트라던가 틀니라던가, 엄청 좋은 해결책들이 나오겠지만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비싸고 귀찮을 테니, 관리 잘하고 치과 자주 가서 스케일링도 받고 검진도 받자.


지금 당장은 치아만 썩지만 뒤늦게 치과 가면 치아는 물론 속까지 덤으로 썩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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