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하나 확실한 것 없는 어정쩡한 인생아, 다만 후회가 없기를!
살면서 그런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어? 하면서 온몸이 깊고 검은 웅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과 대굴빡 뒤편에 흐르는 싸늘한 기운,
인생 좆됐다의 순간들.
중학생 때 중간고사인지 기말고사인지 3일간의 시험기간 첫째 날 시험을 보고 일찍 끝나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신나게 게임을 때리고는 혹여나 아빠에게 걸려 혼이 날까 무서워 집에 와 친구에게
'만약에 울 아빠한테 전화 와서 피시방 갔냐 하면 아니라고 하셈 ㅋㅋ' 문자를 보낼 것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받는 사람 아빠 - 전송 초고속 진행을 하고 나의 sky사 듀크 폰 화면 위로 편지 봉투가 접히며 날아가는 그 시절 그 짧은 문자 전송 화면을 보며 '어어 뭔데 시발 이거 아닌데 어' 빨간색 종료 버튼을 존내게 연타해 보지만
메시지가 전송되었습니다- 문구가 덩그러니 띄워졌을 때
그 순간이 그랬고
운전면허를 따고 면허증을 장롱 속에 처박아둔지 어언 1년 6개월 만에 엄마 아빠 해외여행 갔다가 귀국하는 날 인천 국제공항으로 마중 나간다며 아빠 차를 끌고 나갔다가 주차 뭐 대충 구겨 넣으면 되겠지, 하고 빈자리에 들어가는 도중
주차장 기둥에 빡 하는 소리와 함께 백미러가 접히며 드르르르륵 하고 차 옆문이 다 먹혀 홀리쒯 좆됐다! 했던
그 순간이 그랬다.
요즈음 들어 내 미래-뭐해먹고살지-를 생각할 때마다 그 인생 좆됐다의 기분이 든다.
어느덧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사실 전에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걱정이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군 제대 후 여행 겸 어학연수 느낌으로 두 달을 가있었던 호주에서 봤던 나보다 한 살 많은 한국인 형이 타투이스트 일을 하면서 주에 많이 받으면 200까지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아 씨발 이거지!' 하며 주변에 나는 타투이스트가 될 거야 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면서 미술 배운다고 개지랄 떨던 그때 역시 깊은 고민은 없었다.
사실 그때 친구들의 븅신, 지랄을 해라 하는 반응 (아직까지도 놀림거리인데, 마지막으로 오랜 친구를 만났을 때도 아주 신명 나게 놀림을 받았다. 이 새끼 그림 좆도 못 그리는 게 남의 몸에 낙서해서 인생 여럿 조지게 하려고 했다고ㅋㅋㅋㅋ)과 내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하는 친척 형의 안쓰럽고 조심스러운 눈빛을 조금은 진지하게 받아들여 볼 걸, 하는 생각도 심심치 않게 든다.
생뚱맞게 타투이스트를 꿈으로 가졌던 것이 문제라는 얘기는 아니고, 그냥 돌이켜보니 그때 그 순간들이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장래희망을 쓸 때와 다르게 이런 걸 해보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를 처음으로 고민했던 시기였다는 거다. 이 븅신이 뭐래는 겨 하는 반응들을 그냥 낄낄낄 흘려보내지 말고, 최소한 두 종류의 행동으로 이어졌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발 떨어져서 정말 이 일이 하고 싶은지, 할 수는 있는지, 내 성격 성향상 어울리는지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여러 진로에 대한 계획을 '생각'만이라도 해보던가
쏠 수 있어! 하며 정말로 방아쇠를 당겨버린 예림이처럼 나 진짜 할 수 있다니까? 하면서 죽어라고 그 길을 파보던가
무엇 하나로라도 이어졌다면 큰 도움이 됐을 텐데, 하는 거다.
뭐, 그랬어야 했는데 꺼이꺼이 땅 치고 울고 하는 건 아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단계였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이 두 갈래 길에서
'오잉 두 갈래 길에서 그냥 뒤로 돌아가면 세 갈래 길 아닌.가~요 ? 낄낄낄낄 그냥 돌아갈게요~ 낄낄 아 우르프 한판 하고 생각한다고요ㅅㅂㅋㅋ' 했다는 거.
그 결과 이도 저도 아니게 어영~부영~ 1년이 지나가고 (사실 그 결과라고 표현하는 것도 웃긴 게 연속된 인과관계라기보다 그냥 내가 땡깡 놀았던 것이긴 하다.) 노력은 커녕 진지하지 조차 못했던 타투이스트라는 꿈은 당연하게도 지워져 갔다.
그러다 다시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데? 했던 것은 18년도 2학기에 정원희 교수님의 디지털 미디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관심이 생긴 AR/VR 콘텐츠 전문가이다. 어떻게 보면 고등학생 이후로 다시 광고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은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 것인데, 다른 것보다 그 교수님 사람 자체가 정말 멋있었던 것이 크다. 알랑 방귀 뀌자는 게 아니고 (그분이 읽을 리도 없겠다만) 정말 당시에 모든 수강생이 우러러봤던 것 같다. 이렇게 살고 싶다 교수 편! 투표 같은 게 있었다면 무조건 1위를 장담할 정도.
아무튼 그 교수님의 회사에 테크놀로지, 필름 등의 부서에 AR/VR 기술이 다양하게 연구, 활용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뭔가에 홀려 대가리가 고장 난 사람마냥
AR? VR? ARVR? 지지지직 ARVRARVRARRRRRRRRRRRRRR 그르르르륽ㄱ 그래 이거야 AR VR을 공부해서 이를 활용한 광고를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는 거야 그러곤 썅 겁나 글로벌하게 세계를 싸돌아다니며 광고도 만들고 증강현실 가상현실 캠페인도 해보고 다 하자 씨바! 인생 계획 끝.
이렇게 되어 다중 전공(=복수전공)을 계획하게 되었는데, 당시 우리 학과에서는 코딩이 살 길이다! 해서 붐이 일었던 소프트웨어 융합 대학 ICT 융합학부 미디어 테크놀로지학과로의 다중 전공 신청생이 많았다. 그 학과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 중에 광고 tech가 있어서인데 (실제로 우리 학과에서 미디어테크 쪽으로 적을 옮기신 교수님도 계셨고) 나 역시 저걸로 다중 전공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문제는 다중 전공을 다짐하게 된 계기인 AR/VR 강의가 디자인 테크놀로지학과로 빠져있던 것이다. 당시에는 뭐가 문제야? 어차피 AR/VR 배우려고 하는 건데. 그냥 해! 이런 마인드였고, 고질적인 병인데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대한 경외감(기본적으로 내가 존나 못하기에 생기는..) 같은 걸 버릴 수가 없어서
'뭐 디자인? Design? 안녕하세요 디자이너 진명이에요 후욱후욱 와 씨바 좆 간 지 다 !'
이런 병신 같은 생각이 더해져 에라이 그래 한번 가보자, 디자인 테크놀로지학과로 가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문제 될 것이 없는데 굳이 문제라고 한 이유는 그다음인데, 3학년부터 다중 전공을 병행하게 되어 졸업을 제때 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테크 전공과목을 열리는 대로 듣는 편이 유리해 최대한 다 듣다 보니 정작 AR/VR 수업은 한 학기당 하나씩밖에 못 듣고 (애초에 AR/VR 관련 수업이 학년당 하나밖에 없었다) 뭔 생각한 적도 없었던 3D 모델링 수업-제품 디자인-을 겁나게 듣게 되었고
개 븅신 같지만 AR/VR보다 3D 모델링이 훨씬 익숙하고 그나마 자신 있다는 것이 지금 내 상태다.
마지막 학기를 앞둔 지금, 다시 또 두 갈래 길인 거다! (씨발!) 대충 뭉뚱그리면
AR, VR 기반의 광고 마케팅 <<>> 제품 디자인
인데, 물론 둘 다 내가 엄청, 정말 엄청 많이 부족해서 채워 넣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전자의 경우 AR, VR 공부는 진짜 발 한번 담가본 수준이고 광고도 뭐 주전공이긴 하지만 내가 인턴이고 공모전(한두 번 넣은 것도 다 탈락)이고 한 게 없으니 문제고,
후자의 경우 재미는 있는데 디자인 툴도 지금처럼 한두 개 정도론 택도 없을 것 같고, 결정적으로 여전히 드로잉이 겁나 후지다 (수업 때 교수님이 내 제품 스케치를 보고 한 15초 스턴을 먹으셨다! 아-엄-흠 콤보ㅋㅋㅋ).
디자인 센스도 솔직히 개 구리고.
근데 그렇기에 이번이야말로 이 두 갈래 길에서 뒤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는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정말 둘 다 포기해야 할 정도로 늦어버리기 전에.
물론 이미 충분히 이도 저도 아닌 걸 끌고 가고 있나? 너무 늦게 생각한 건가? 하는 등골 서늘해지는 인생 좆됐다의 순간들을 만끽하고 있긴 하다.
무슨 선택을 하든 둘 다 날리고 전혀 생뚱맞은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잘 안다.
그래도 예전 타투이스트의 두 갈래 길에서 선택의 결과가 꼭 '타투이스트가 되냐 마냐'가 아니어도 내가 살아가는데 더 영양가 있는 거름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지금의 생각처럼
훗날의 나를 위해 어떻게 한번 조살내 보자고.
뭐 해 먹고살게 될 지도 정말 정말 정말 모르겠고
지금 내 상황이 마치 금이빨 매입하는 자전거 판매점처럼 어정쩡한 것도 사실이지만
뭐가 됐든 나 하기 나름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