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지리산에서 길을 잃고 헤맸던 '세석평전'이 떠올랐다. 국립공원은 이정표도 아주 잘 되어 있어서 등산로를 놓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나는 길을 잃었다.
줄지어 늘어선 1,600~1,800미터 이상의 고봉들은 새벽부터 비구름에 덮여 있었다.
나는 그 비구름 속에 있었다. 이 길이 맞나 싶어 누군가에 묻고 싶었지만 궂은 날씨 때문인지 아무도 없었다. 시야가 30~40m밖에 되지 않았다. 내가 걷던 길이 끝난 것처럼 보였으나 북한산에서는 흔하게 넘어 다니던 암릉이 보여서 타고 넘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길을 찾아 계속 내려갔다. 한참 뒤 길이 사라졌다. 짐승들만 다닌 흔적이 있는 조릿대 숲에 내가 서 있었다. 핸드폰 배터리는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다. 뒤돌아보니 내가 어떻게 내려왔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두려웠다. 심장이 쫄깃해져 왔던 길을 더듬어 올랐다.
세석평전의 일부분
실수로 넘었던 그 암릉을 겨우 찾았다. 사람들이 보여서 안심이 됐다. 길을 묻자 친절한 대답이 돌아왔다. 길을 잃기 전 보이지 않던 촛대봉 이정표가 버젓이 보였다. 장터목대피소 2.7km, 천왕봉 4.4km.
돌아와 다시 살펴보니 이정표가 보이더군요.
종주 후, 세석평전을 검색했더니 관련 기사가 보였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닮은 우리나라 특산종 구상나무가 지리산 군락지에서 7만 그루가 고사했다는 것이었다. 반야봉과 중봉에서의 고사율이 70%로 가장 피해 컸고 봄철 극심했던 가뭄이 고사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아~ 그래서 내가 중봉을 넘을 때,
사방에서 시큼하고 상한 냄새가 계속 났었구나.’
세석평전의 어린 구상나무를 피해지역에 옮겨 심을 계획이라고도 했다.
고시목이 눈에 띄게 많았다. 냄새도 났다.
어머니의 산, 지리산도 아프다. 폭염과 가뭄으로 세상 곳곳이 피해를 입는다.
어머니의 산도 실상은 이러하기에 우리 주변의 산과 숲도 살필 필요가 있다. 자연은 우리의 모태이다. 다시 찾을 지리산, 그 아픔이 회복될 수 있도록 작은 기부를 이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