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핑퐁이쿠스
(Homo Pingpongicus)

치고 받는 신인류

by 박동환


탁구치는 인류.png


“호모 발렌스(Homo Ballens)라고 알아? 꼭 너야.”
공만 보면 못 참는 나를 두고 친구가 던진 농담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야구, 골프, 테니스, 탁구…. 손으로 즐기는 공놀이에는 유난히 열정이 솟는다. 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이유가 ‘도구를 잘 다뤘기 때문’이었다니, 공을 다루는 재능도 어쩌면 생존 본능의 잔재일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물체의 궤적을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고 반응해야 했을 테니까.


요즘 나는 완전히 탁구 삼매경이다.

“하루라도 탁구를 치지 않으면 손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 괜한 농담이 아니다. 좁은 공간에서도 칠 수 있고,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다. 잠깐만 쳐도 땀이 나고, 금세 활력이 돌며, 짧은 시간 안에 승부가 나서 짜릿하다. 순식간의 반사운동이 순발력을 키워주고, 상대의 습성을 읽어 허를 찌르는 순간의 쾌감은 거의 예술의 경지다.


무엇보다 탁구는 나이를 불문한 스포츠다.
내가 다니는 탁구장에는 여든이 넘은 어르신들도 모여 든다. 기력은 예전만 못해도 탁구대 위에서는 눈빛이 번뜩인다. 구슬땀을 흘리고 나면 그들의 얼굴엔 자신감과 행복이 번진다.
한 병원의 실험 결과도 흥미롭다. 성인병을 앓는 70대 노인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은 조깅, 다른 쪽은 탁구를 시켰다. 5개월 뒤, 두 그룹 모두 건강이 좋아졌지만 탁구 그룹의 건강지수와 뇌활동 향상이 훨씬 두드러졌다고 한다. 탁구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치매·성인병 예방 효과가 뛰어난 종합 스포츠임을 보여준다.


어느 날 동호인 한 분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탁구 얘기 한번 써보세요.”
고민 끝에 떠오른 제목이 바로 ‘치고받는 인간’이다. 단순히 탁구 기술을 이야기하기보다, 탁구의 리듬과 오늘날 인간의 소통방식을 겹쳐보고 싶었다.


21세기의 인간은 너무 빠르다.
말이 오가면 반박이 튀어나오고, 논리를 주고받기 전에 감정이 먼저 맞붙는다. 탁구공처럼 말이 튕기고, 부딪히고, 되돌아온다. SNS의 댓글창은 거대한 탁구대다. 한쪽이 공을 던지면, 다른 쪽은 받아칠 준비를 한다. 대화는 랠리가 되고, 랠리는 곧 전쟁이 된다.


그들에게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끝없이 오가는 말의 공 속에서 모두가 지쳐간다.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생각보다 빠른 리턴이 곧 진실”이라 믿기 때문이다.

탁구선수가 숨 막히는 스피드와 회전을 견디듯, 신인류 또한 찰나마다 밀려드는 정보와 감정의 파도를 버텨야 한다. 공은 돌고, 말은 튕기며, 세상은 점점 더 시끄러워진다.
말은 오가지만 정작 대화는 없는 시대, 신인류 호모 핑퐁이쿠스(Homo Pingpongicus)다.


그러나 공은 언제나 ‘누군가가 받아줄 때’비로소 게임이 된다.
탁구에서처럼 말도,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치고받는 기술’이 아니라 받아주는 품이다. 진짜 대화는 리턴이 아닌 공감에서 시작된다. 결국 인류의 진화는 공을 잘 치는 능력이 아니라, 서로의 리턴을 잠시 멈추고 귀 기울이는 지혜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호모 핑퐁이쿠스의 시대를 지나 다시금

호모 사피엔스, ‘지혜로운 인간’으로 돌아가는 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찾아야 할 새로운 진화의 방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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