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한 개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초코파이 한 개.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가볍다. 그러나 법정 위에 올려놓는 순간, 초코파이는 한 사람의 삶을 짓누르는 돌덩이가 되고 만다.
창고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초코파이 하나. 허기진 마음에 집어들어 먹었을 뿐인데, 그 순간 과자는 더 이상 과자가 아니었다. 400원짜리 달콤함은 법의 이름으로 절도가 되었고, 한 노동자의 어깨 위에 범법자의 낙인을 새겼다.
벌금은 5만 원. 어지간한 저녁 식사 금액이었지만, 그 판결은 돈으로 가늠할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한 사람의 생계와 명예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작디작은 초코파이 하나가 인생의 무게로 돌아오는 순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된 장면이 겹쳐졌다.
19세기의 빵, 장발장의 이야기였다.
19세기의 빵
빵 한 조각. 장발장에게 그것은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 아니라, 가족을 살리기 위한 절박한 생존의 무게였다. 그러나 법은 그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았다.
철창은 닫히고,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선고되었다. 작은 빵 하나가 인생 전체를 구속하는 쇠사슬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것이 19세기 법이 보여준 정의였다.
21세기의 초코파이
두 세기가 훌쩍 흐른 뒤, 다른 땅에서 같은 풍경이 되풀이된다.
이번에는 빵이 아니라 초코파이였다. 생존의 절박함 대신, 잠깐의 출출함이 불러낸 행동이었다. 그러나 법은 그 사소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의 눈앞에서 400원은 4억과 다르지 않았다. 숫자는 달라도 죄의 무게는 같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가슴속 상식은 묻는다.
“정말 이것이 그토록 무거운 죄란 말인가?”
회사라는 공동체 안에서 작은 잘못 하나조차 법정 다툼으로 비화되는 사회라면, 그 법은 누구를 위한 방패인가. 강자를 지키는 성벽은 아닐까.
편의점의 폐기 도시락
비슷한 그림은 편의점에서도 펼쳐졌다. 알바생이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을 먹었다. 쓰레기통에 던져질 운명이던 음식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그것마저 ‘횡령’이라며 문제 삼았다.
법은 냉정했다. 쓰레기통의 도시락도, 창고 구석의 초코파이도 모두 똑같이 ‘재산’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은 달랐다.
“버려질 것을 먹는 게 죄라니. 차라리 상을 줘야 하는 일 아닌가?”
분노는 거세게 일었고, 결국 무혐의가 내려졌지만, 그 사건은 오래도록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법은 정의일까, 형식일까
19세기의 빵과 21세기의 초코파이.
시대는 달라졌으나, 법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작은 음식 하나에도 죄의 굴레를 씌운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법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감싸 안는 온기다. 빵과 초코파이의 무게 앞에서, 법은 스스로의 의미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초코파이가 던진 질문
초코파이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강자의 손에 쥐어주기 위해 있는가, 아니면 평범한 이들의 상식을 지켜내기 위해 있는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법이 어디 있냐.”
그 말에는 분노와 자조, 그리고 희망이 뒤섞여 있다. 분노는 상식이 무너진 현실을 향하고, 자조는 제도 앞에 무력해진 자신을 향한다. 그러나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언젠가는 법이 형식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작동하리라는 믿음.
19세기의 빵과 21세기의 초코파이.
그 작고 사소한 것들이 던지는 물음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정의가 빵보다 가볍고, 초코파이보다도 가볍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