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화진포에서 만난 작은 미스터리
바닷가에서 산책을 하다 보면,
이따금 예기치 않은 풍경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며칠 전 고성 화진포해수욕장에서 만난 ‘그것’이 그랬다.
바람은 부드럽게 불고, 바다는 잔잔하게 밀려왔다.
모래 위에서 햇살이 반짝이는 평범한 오후였다.
그러다 문득, 시선 한가운데 사과 하나가 들어왔다.
“누가 먹다 버린 건가?” 싶어 지나칠 뻔한 그 순간,
그 앞에서 또 사과 두 개가 보였다.
간격은 일정했고, 방향도 일정했다.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에는 감 두 개,
그 다음엔 배, 그리고 바나나, 석류.
10~20미터마다 두세 개씩,
백사장을 따라 길게 이어진 과일의 행렬.
대충 세어보니 스무 개가 넘었다.
이 넓은 모래밭에 누가, 왜, 어떻게
이렇게 과일들을 놓고 간 걸까.
바닷가의 ‘작은 미스터리’를 두고 나눈 이야기들
친구들과 의견을 나눴다.
“제사 지내고 남은 걸 놔두고 간 걸까?”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리려는 의식 아닐까?”
“새해 액땜처럼 예전엔 음식을 길모퉁이에 놓는 풍습도 있었지.”
“혹시…간첩의 신호?”
웃음 섞인 농담이 오갔지만
어쩐지 완전히 농담으로만 들리진 않았다.
설명되지 않는 풍경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기억과 이야기를 꺼내놓게 된다.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
어른들의 무속신앙,
어떤 사람의 마음을 기리는 방식까지—
그런 상상들이 하얀 모래 위를 지나가는 파도처럼
조용히 겹겹이 쌓여갔다.
바다는 모든 사연을 알고 있다는 듯
과일들은 마치 누군가가 조용히 내려놓고 간
‘사려 깊은 흔적’처럼 보이기도 했다.
햇빛이 길게 드리운 그림자 위에서
사과와 배, 감은 묵묵히 자리하고 있었다.
바다 쪽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바다는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누가 어떤 마음으로 과일을 놓았는지,
그 마음이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우리는 그저
그 풍경을 ‘우연히 목격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오래 남는다.
사람이 살다 보면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장면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날의 과일처럼,
그냥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만 남는 순간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모래 위에 스무 개 남짓 놓여 있던 그 과일들은
누군가의 사연이 담겨 있든 아니든,
잠시 우리에게만 모습을 보여주고
파도와 바람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야말로
어쩐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조용하고 묘하게 따뜻하게.
화진포의 늦가을 바다는
그날 우리에게 작은 이야기 하나를 건네고 있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란,
언제나 이렇게 불쑥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