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긴 악연을 끝냅니다.

by 재윤

오늘 영어학원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 이야기까지 흘러갔다. 각자가 살아온 가정의 환경은 달랐지만, 서로의 가정사를 꺼내다 보니 문득 엄마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부모라는 존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 네이버 블로그에는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쓴 「아버지 전상서」라는 글이 있다. 지독하게 미웠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선물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가족 중 누구도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미웠지만 시간이 지나 문득 되돌아보면 그는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질문이 남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던 때, 정확히는 내가 스무 살이 될 무렵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다. 그 이후 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식을 참 못살게 굴었다. 이혼 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지독하게도 엄마의 행적을 쫓았고 엄마는 늘 아버지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며 살았다.


경상도 태생이신 엄마는 부산에서 창원으로, 다시 밀양으로 거처를 옮기며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가정사의 세부를 이곳에 적는 것이 두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해 자세한 이야기는 남기지 않지만, 그 숨바꼭질은 세월의 힘 앞에서 포기할 법도 했고, 엄마 입장에서는 더 이상 떨지 않아도 되었을 법한 시간 이후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다만 시간이 지나 그 장면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면, 미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지점들이 남는다.


아버지는 아마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자수성가해 돈도 벌어보고 삶에서 명예도 얻었지만, 스스로를 돌보는 내면의 힘은 많이 약했던 사람 같다. 나는 그가 아니기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수십 년간 지켜본 아버지의 모습 속 한 부분은 자신의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분노와 모질음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그 나약함을 엄마가 알아 차리길 바랐고, 엄마 또한 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기를 바랬다. 이 문제로 엄마와 크게 다투기도 했지만, 엄마의 사연을 들으면 또 고개가 숙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엄마도 부모이기전에 여자이고, 한사람이다.


친구와 나눈 대화의 결론은 결국 “시대가 그랬다”는 말로 정리되었다. 격동의 시절을 살아온 그분들도 다른 부모 아래에서 성장했다면 조금은 더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내면을 돌보는 힘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자식들 역시 부모를 향해 덜 미안하고, 덜 아픈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년 가을, 누나와 함께 엄마와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셋이 함께한 여행은 참 오래간만이었다. 저녁이 되면 서로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엄마는 끝내 마지못해 사과를 했지만,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은 사실 다른게 아니다. 우리의 부모로서, 그리고 엄마를 지켜낸 시간으로부터 고맙고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 그 말은 그동안 힘겹게 버텨온 선택들을 어루만져 주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마지못해 들은 사과는 오히려 조금 불편하게 남았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아픔을 가장 크게 여긴다. 나도, 누나도, 엄마도,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도 우리는 한 번도 가족을 위해 서로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나부터 실천하기로 했다. 누가 먼저 하면 지는 게임은 아니지 않은가.


친구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게 내가 선택한 첫 번째 선택이다. 엄마의 근황을 묻고 안부를 챙겼다. 무슨 일이 있어야만 전화하는 사이가 아니라, 보고 싶고 그리워 전화할 수 있는 사이. 이제 나에게 가족은 그런 존재다.


사주는 신금이다. 흙 속에 묻혀 있던 보석이라 했다.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흙을 털어내는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을 지나야만 비로소 빛을 낼 수 있는 운명이라고. 돌아보면 참 그 말이 맞았다. 술에 기대던 시간도, 나를 돌보지 못했던 날들도, 사람과 관계 앞에서 질기게 쌓아 올린 마음의 벽도 모두 그 흙이었을 것이다.


시간은 무척이나 오래 걸렸지만 술을 끊고 나를 돌보며 질긴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가족이라는 마지막 상처의 흙덩이를 이제는 털어냈다. 스스로 명명하자면, 이게 내 마지막 흙이다. 더 이상 나를 가두고 있던 사슬은 없다.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다.

더 이상 슬프지 않다.


흙을 털어낸 보석은 다시 땅속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앞으로 내 삶은 찬란할 것이다.


앞으로 내 삶은 행복으로 가득할 것이다.

내가 지금부터 그러기로 정했다.

그거면 충분하다.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

엄마가 내일 누나와 크루즈 여행을 가신다고 한다. 모른 척 지나치기엔 마음이 쓰여 용돈을 붙이고, 사랑한다는 말도 함께 보냈다.


...그런데 읽었는데 답장이 없다.


순간 액수가 부족했나 싶어 웃음이 났다.

역시 가족은 참 어렵다.

그래도 무탈히 잘 다녀오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