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달라지는 순간

by 재윤

갈등은 감정의 영역에서 온다. 가치관의 차이일 수도 있고, 서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결국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그 논지에서 갈등은 발생한다.

갈등은 싸움이 되기도 하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서로의 주장이 충돌하다 보면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커지고, 감정은 더없이 상한다. 이 갈등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나 발생한다. 가족, 친구, 직장, 연인 간에도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존재해 왔다.

조금 무서운 이야기지만, 원시시대에 죽음의 원인 90%가 살인이었다는 이야기를 어떤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대부분 뒤쪽 두개골이 함몰된 상태로 유골이 발견되었고, 뒤에서 가격당했을 것이라 추론한다고 했다.

아마 원시시대에도 갈등은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이성적 판단이나 법과 제도 같은 규칙이 자리 잡지 않았기에, 그 갈등으로 촉발된 감정을 그렇게 해소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내 생각도 더해 본다.

갈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무서운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침묵이다. 얼마 전 이경규님이 쇼츠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공도 가만히 있으면 맞히기 어렵다. 골프가 어려운 이유가 그래서다. 가만히 있다는 건 움직이는 것보다 예측이 더 어렵다. 그런데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침묵도 그렇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생각을 읽히기 쉽지만, 침묵하는 사람은 가만히 있는 공처럼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침묵은 상대를 긴장하게 한다. 대화는 주고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상대의 말을 들으면 반박하거나 내 생각을 전할 여지를 갖게 된다. 그런 점에서 침묵은 분명 다른 성질을 가진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갈등 앞에서 침묵을 선택해도 좋다. 다만 침묵의 단점은 갈등을 해소해 주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침묵보다 존중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존중은 거창한 게 아니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결국 내 스스로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서 출발한다.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의 주장보다, 내가 어떤 지점에서 상대를 흥분시켰는지를 먼저 돌아보고, 사과를 건네거나 상대의 말을 이해해 주는 것.

나는 그것을 존중이라 생각한다. 결국 존중도 타인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에게 전하는 것이다.

옛친구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그 친구의 어머님을 소개받았을 때, 내 딸이 왜 좋으냐고 물으셔서 순간 당황해 아무 대답도 못했던 적이 있다. 버스는 이미 떠났지만, 그 일 이후로 나는 그 질문을 꽤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때 못한 내 대답을 친구에게 여러 번 전했던 적이 있다.

만약 다시 그 질문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우리는 화해가 빨랐다.

우리에게도 갈등은 있었다. 하지만 그 갈등을 하루 이상 끌어본 적은 없었다. 대부분 친구가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나도 미안하다고 화답했다. 사실 그 친구가 잘못한 건 없었는데도, 늘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마음이 고맙고 또 미안했다.

사실 내가 존중을 배운 것도 다 그 옛친구 덕분이다.

그 덕분에 나는 갈등이 생기면 먼저 손을 내민다. 자존심을 부린다고 갈등이 해결되지도 않고, 그 불편한 감정으로 하루를 망치고 싶지도 않다.

사실 오늘 오전, 사장님과 다소 감정적인 갈등이 있었다. 사연을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우리의 감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딱 한 시간이 걸렸다. 방법은 간단했다. 진심을 담아 오해와 상황을 설명하는 문장에 하트를 담아 카톡을 보냈고, 사장님은 그 메시지를 보시자마자 전화를 주셨다.

코끝이 찡했고,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갈등은 존중으로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화해는 관계를 더 깊게 만든다. 혹시 오늘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 보는 건 어떨까.

용기는 별것 아니다. 만약 갈등 속에서 상대에 대한 미움이 남아 있다면, 당신의 마음도 충분히 불편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불편함도 함께 털어내시길.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딱 이 세 단어면 충분하다.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