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로 사귄 친구가 한 명 있다. 내 기준에서 조심스럽게 판단해보자면, 그는 다소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배려심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배려가 늘 상대를 향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본인이 원할 때, 본인이 감당할 수 있을 때만 꺼내는 배려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와는 성향이 달라서 초반에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조금 불편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천성적으로 싫은 소리나 거절을 잘 못한다. 웬만하면 맞춰주고 넘긴다. 그러다 정말 아니다 싶을 때가 되어서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온몸을 던져 저항한다. 늘 그랬다. 중간이 없다.
이 성향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쳐야 하나’라는 생각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단점은 숨기라는 문장을 어디선가 읽은 뒤부터다. 나는 내 장점인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하려는 태도’를 조금 더 활용해보기로 했다. 쉽게 말하면 이거다. 저 사람도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겨보는 연습.
생각해보면 이건 마음을 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도 그렇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있으면, 결국 남는 건 소진뿐이다. 세상을 바꾸지 못한 채, 나만 닳아간다. 그래서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이번 관계에서 또 하나를 배운다.
배움의 자세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이타적인 관점으로 살아왔다. 그 시절의 나는, 어떤 문장을 진심으로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책 기브 앤 테이크였다. 이 책은 말한다. 기부하는 삶이 결국 성공한다고.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 기버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가장 가난한 사람들 중에도 기버가 많다는 점이다. 이 두 집단의 차이는 선함이 아니다. 자발성이냐, 착취냐의 차이에 가깝다.
나는 아직 내면이 단단해지기 전에 기버를 자처했다. 그 결과는 뻔했다. 남에게는 후했고, 나 자신에게는 인색했다. 결국 나를 착취한 건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보면 나는 ‘가난한 기버’에 가까웠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종종 감탄한다. 예전엔 이기적인 건 나쁜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늘 자신을 우선순위의 맨 위에 둔다. 그 태도에는 묘한 자신감이 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때로는 경의롭기까지 하다.
요즘 나는 그 친구와 종종 시간을 보낸다. 살아온 인생의 감각 덕분인지, 그의 기분이 몇 번씩 바뀌는 게 느껴진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순간도 분명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애써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 한다. 아직은 나도, 사람 앞에서 단단해지는 연습 중이니까.
그를 관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내면이 단단한 것과 이기적인 것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자기 중심은 언제부터 건강한 중심이 되고, 언제부터 타인을 흔드는 칼이 되는 걸까.
예전에 가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이코패스들은 세상을 살아갈 때 참 편하지 않을까. 물론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멘탈과 감정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거다.
늘 다치고, 깨지고, 슬퍼하고, 상처받는 사람들은 작은 위로에도 쉽게 마음을 연다. 그게 때로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버겁다. 그래서 요즘은 나 역시 생각한다. 덜 상처받으면서 사는 법에 대해서. 더 이상 불필요하게 무너지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사람은 언제 누구를 만날지 모른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선택지는 결국 둘 중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관계를 정리하거나, 나에게 없고 그 사람에게는 있는 무언가를 배우거나. 하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날엔 거리를 두고, 어떤 날엔 배운다. 중요한 건 그 과정 속에서도 내가 나를 잃지 않는 일이다.
오늘도 빠델을 치고, 마사지를 받고, 찜질방에 왔다. 여기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이제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이제 하고자 하는 건 그냥 한다.
그게 2026년의 나다.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