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고 다쳐야 아는 것들.

by 재윤

금요일이다.


말일의 평일이라 한 달 중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냈다. 결산 자료를 보고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감사한 건, 벌써 8년째 이 일을 하다 보니 예전보다 수월해졌다는 사실이다. 시스템을 만들고 나서는 적은 인풋으로도 적당한 아웃풋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월말 결산이 끝나면 혼자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갔다. 그날만큼은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다. 술 한 잔과 함께. 하지만 이제는 술을 끊은 지 100일이 다 되어 간다. 지금은 이런 숫자조차 크게 의미가 없다. 술 생각이 거의 나지 않는다. 가끔은 이런 내가 낯설고, 그래서 더 신기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술 없이 하루를 버티는 게 불가능하다고 믿었는데 말이다.


예전의 나는 힘들면 늘 술 뒤에 숨었고, 사람에게 기대었다. 이제는 둘 다 없다. 오직 나만 있다. 힘든 마음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 나는 책을 한 줄 더 읽거나 글을 쓴다. 도망치지 않고, 잠시 그 앞에 서 있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래서 오늘은 일기 같은 이야기를 잠시 접고,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스스로를 너무 모른 채 살아간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부딪혀보지도 않은 지점을 한계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보면 존경이라는 이름으로 권위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따른다. 권위는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다.


"그렇다면 이 권위는 어디서 생겨날까?"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중간에 포기했을 선택을, 그들은 오래 붙들었다는 점이다.


"시간이다."


한 직장에서 수십 년을 버틴 사람, 하나의 선택을 수십 년간 유지한 사람. 그 결과가 대단해 보이는 이유는 재능 때문만은 아니다. 그 시간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변호사나 의사처럼 오랜 공부 끝에 얻는 자격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그 시간을 쓴다고 같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결과는 더 단단한 신뢰가 되고, 우리는 그것을 권위라 부른다.


나 역시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젠가 시간이 쌓이면, 그것이 나만의 작은 권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 어쩌면 권위의 다른 말은 ‘인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 권위의 출발점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면이었으면 좋겠다. 공부를 하는 이유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이유도 결국은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여야 오래간다. 우리는 너무 자주 타인의 기대를 기준으로 선택한다.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뒤로 미룬 채 말이다.


돈도 벌어야 하고 사회생활도 해야 한다. 그런 선택들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내가 술을 끊은 이유를 떠올려 보면 분명해진다. 누군가를 위해 끊었다면, 나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선택했고,

내가 결정했기에 가능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술이 싫어졌기 때문에 그만두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보게 되었다. 우리는 늘 순서를 거꾸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선택이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찾은 답은 이것이다.


"한계를 계속해서 부딪혀 보는 것."


말은 쉽다. 동기부여 영상에서도 흔히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어떻게 하라는 말은 없다.


나는 한 달 동안 아침 6시에 일어나 새벽 러닝에 도전했다. 실패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한 달은 지금의 나에게 무리라는 사실을.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새벽이 아니라 낮에 뛰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성공했다.


술을 끊기 위해 병원 진료도 받았다. 약 덕분에 몇 달은 끊을 수 있었지만, 의욕까지 함께 사라졌다. 약을 끊고 다시 술을 마셨다. 그런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약 없이 이 시간을 버티고 있다.


이 이야기들이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것이다. 우리가 한계라고 믿는 지점의 대부분은, 아직 충분히 부딪혀보지 않은 지점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는 다르다. 그 그릇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부딪히며 넓어진다.


그 과정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끝에는, 당신이 선택한 삶을 감당할 수 있는 자신이 서 있다. 나는 지금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과거의 나는 누군가에게 부끄러웠을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 비록 가진 것이 많지 않더라도.


이 말을 전하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권위를 부여하자고.

아직 부딪혀보지 않은 지점을 한계라고 부르지 말자고.


그리고 자유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버텨본 사람만이 갖는다고.


"내 한계는 나만이 정할수 있다."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