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행 둘째 날 밤이었다. 엄마와 누나, 매형과 숙소 거실에 둘러앉아 있었다. 여행지의 밤은 대체로 가볍고 웃음이 많기 마련인데, 그날은 이야기가 조금 깊어졌다. 매형이 조심스럽게 내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어떻게 버텨왔는지, 말하지 않았던 시간들에 대해. 나는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엄마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고개를 약간 숙인 채로, 오래 생각하는 사람처럼.
한참의 침묵 끝에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아들, 엄마가 미안해.”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도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오래 묵은 숨이 천천히 빠져나왔다. 나는 그 말을 듣기 위해 그렇게 버텨온 걸까. 그 순간 엄마가 나를 끌어안았다. 마흔넷에 엄마 품이 따뜻하다고 말하는 건 조금 어색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은 나이가 중요하지 않았다. 등을 두드리던 엄마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오래 아팠다. 누가 더 아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버텼을 뿐이다. 나는 늘 혼자라고 느꼈다. 부모를 편하게 의지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다. 열등감이라고 부르면 간단하겠지만, 그 말 하나로는 부족했다. 기댈 수 없는 시간은 사람을 빨리 어른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어른은 어디에도 기대지 않는 법부터 배운다.
나는 강한 척을 했다. 괜찮은 척을 했다. 다 이해하는 어른인 척을 했다. 하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나 대신 “네가 고생했다”고 말해주기를 오래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사과는 잘못을 따지는 말이 아니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 역시 아팠다는 것을 처음으로 함께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그 한마디에 내가 아무도 모르게 붙잡고 있던 시간들이 살며시 손을 놓았다. 내가 기다렸던 것은 인정이 아니라, 공감이었다.
사과는 과거를 지우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의 온도를 바꾼다.
경주에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봄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연둣빛이 막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 완전한 봄은 아니었지만 분명 겨울은 물러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 안도 그랬다. 얼어붙어 있던 마음에 가늘게 남아 있던 마지막 얼음이 조용히 물이 되고 있었다.
그날 밤의 포옹은 짧았지만 오래 남았다. 나는 엄마를 용서했다기보다 나를 조금 놓아주었다. 버티느라 거칠어졌던 마음을, 혼자 커야 했던 시간을, 괜히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던 날들을. 이제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나를 소모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마 내 인생에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천천히 봄이 오는 모양이다.
세상은 때로 너무 늦게 응답한다. 그래서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어느 날,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찾아온다. 오랫동안 묵혀둔 응어리가 조용히 풀리는 순간처럼. 나는 그걸, 경주에서 처음으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