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지 않으면...

by 재윤

글을 쓸 때마다 고민한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첫 문장은 중요하다. 독자는 그 한 문장에서 머물지, 떠날지 결정한다. 나는 늘 말해왔다. 조회수는 상관없다고, 그저 글쓰기 훈련일 뿐이라고. 하지만 솔직해지자. 보여지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거짓이다.


유튜브를 배우며 알았다. 사람은 내용을 보기 전에 썸네일을 본다. 제목을 먼저 본다. 내가 장사를 하며 간판을 고민하는 사장님들께 늘 하는 말도 다르지 않다. “직관적으로 하십시오.” 칼국수를 판다면 그냥 ‘○○ 칼국수 전문점’이라 쓰는 편이 낫다. 멋 부린 이름보다 분명한 정체성이 사람을 움직인다. 글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그런데 오늘, 나는 시작을 못 하고 있었다. 쓰고 싶은 주제는 있었지만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쓰지 말까.’ 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때 알았다. 사람이 멈추는 이유는 거대한 장애물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대부분은 단 하나,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썼다. 지금처럼. 주제와 조금 비켜난 문장들이 이어졌고, 어느새 몇 문단이 채워졌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생각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작하면, 좋든 나쁘든 무엇인가가 움직인다.


지난 시절 나는 무모했고, 많이 아팠고, 남들보다 돌아왔다. 그 시간은 분명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경험들이 내 결정을 빠르게 만들었다. 사람을 만날지 말지, 일을 할지 말지, 내일 무엇을 선택할지. 경험이 쌓이면 결정은 짧아지고, 망설임은 줄어든다. 그것이 내공이다.


며칠 전까지 나는 꽤 깊은 고통 속에 있었다. 글로도 고백했듯,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과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쇼펜하우어는 상실을 죽음과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한 번 죽고 나온 셈이다. 그리고 조금 더 단단해졌다.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이 문장을 남기고 싶다. 지금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아직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시작해 보기를 바란다. 작게라도. 고통은 통과하면 자산이 된다.


나는 한때 나눔에 집착했다. 기버가 되겠다고 애썼다. 그러나 내 잔이 비어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 퍼주기만 했다. 그러다 밑천이 바닥났다. 그때 깨달았다. 나눔은 내 잔이 넘칠 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먼저 채워라. 그리고 넘칠 때 흘려라. 그래야 오래 간다.


오늘은 책과 사랑에 빠진 하루였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하다. 누군가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썼다.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은 언제나 변화를 만든다.


또 하나의 시작이 있다. 브런치 연재 ‘인문학으로 배우는 요식업’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 6시에 한 편씩 업로드된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선언이지만, 4개월 뒤 이 글들을 엮어 출판 의뢰를 해볼 생각이다. 나의 두 번째 책이 되길 소망한다.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기보다, 먼저 내 이야기를 쌓는다.


장사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그걸 몸으로 익혔다.


잘되는 매장의 이유도, 무너지는 순간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선택들도 결국 한 사람의 철학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을 정리하고 있다.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기기 위해 쓴다. 쌓인 기록은 시간을 만나 힘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 작은 길이 되기를 바란다.


글 쓰는 재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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