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보이는 삶의 순서

삶의 끝으로 갈수록 선명해지는 것들

by 재윤

오늘은 엄마 생일이었다. 엄마가 밀양에서 올라왔다. 문득 생각해보니 예전 같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때 엄마는 매장을 비우는 걸 몹시 힘들어하셨다. 하루만 자리를 비워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멀리 다녀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늘 가게가 먼저였고, 일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엄마도 종종 여행을 다니시고, 매장을 비우는 시간도 생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새삼 이런 생각을 했다. 깨닫는 시간은 정말 각자의 시간이 있구나.


누군가는 일찍 알고, 누군가는 한참을 살아낸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예전엔 돈을 버는 것이 중요했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 책임이라 생각하셨을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돈은 중요하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고, 없으면 불안하다. 나 역시 그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사람은 시간이 지나고, 인생의 끝자락에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느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돈이라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 끝까지 움켜쥔다고 해서 마음까지 채워지는 건 아니라는 것. 결국 삶이라는 건 돈만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엄마도 느즈막이 사람들에게 베풀기 시작했다. 거창한 것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전보다 사람을 더 챙기고, 마음을 더 쓰고, 주변을 더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사람도 곁에 남았다. 물론 세상 사람을 다 믿을 수는 없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 믿을 수는 없어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몇 사람은 남길 수 있다.


나는 그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이 곁에 남아야 비로소 믿고 맡기고 나올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사람이 없으면 돈이 있어도 자리를 뜨지 못한다. 늘 불안하고, 늘 직접 챙겨야 하고, 늘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을 남기면 삶에 조금씩 틈이 생긴다.

그 틈 덕분에 쉬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고, 자기 시간을 살아볼 수도 있게 된다. 우리는 보통 돈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모아야 하고, 돈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는 것도 있다. 돈은 삶을 버티게는 해줘도, 삶을 따뜻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 오히려 사람을 남겨야 삶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오늘 엄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 결국 사람을 남긴 사람이 마지막엔 조금 더 자유롭게 사는구나 하고. 예전의 엄마는 매장을 비우는 것조차 어려워하셨다. 지금의 엄마는 그래도 믿고 맡기고 올라오실 수 있게 되었다. 그 변화는 단순히 시간이 흘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간 동안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그 덕분에 곁에 사람이 남았고, 그래서 비로소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삶이 만들어진 것 아닐까.


깨닫는 시간은 각자의 시간이 있다. 누군가는 아직도 돈을 붙들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그 끝에서 사람의 소중함을 배운다. 아마 인생은 그런 식으로 조금씩 방향을 바꾸며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 생일을 보내며 오늘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얼마나 더 벌었는가보다 누구를 곁에 남겼는가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여기까지다.
지금까지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