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함정

사람을 얻는 기술인 줄 알았는데...

by 재윤

사람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세상에는 말을 못해서 손해 보는 사람보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관계를 망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늘 대화의 주도권을 잡아야 직성이 풀렸고, 침묵이 흐르면 괜히 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상대가 궁금해하지도 않은 말, 하지 않아도 될 말, 굳이 꺼내지 말았어야 할 말까지 쏟아내며 살았다. 그때는 몰랐다. 내 입에서 가볍게 나온 말들이, 결국 사람을 떠나가게 만드는 이유가 될 줄은.


나는 듣는 사람이 아니었다. 늘 대화의 주도권을 잡아야 직성이 풀렸고, 말을 멈추면 괜히 밀리는 것 같았다. 가만히 있으면 지는 것 같았고, 침묵은 어색했고, 누군가보다 내가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필요하지도 않은 말을 쏟아냈다.


상대가 궁금해하지도 않은 생각을 덧붙였고, 묻지도 않은 내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그때의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건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줬다. 내 이야기에도 반응해 주었고, 고개도 끄덕여 주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괜찮은 대화 상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상한 일들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가까웠던 사람들이 조금씩 멀어졌고, 어느 순간에는 내가 했던 말들이 돌아서서 나를 험담하는 재료가 되어 있었다.


왜 그런지 당시에는 몰랐다. 억울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사람을 떠나가게 만든 건 상황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던 수많은 말들이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왜 나는 듣지 못할까.'

'왜 사람은 듣는 걸 이렇게 어려워할까.'


궁금해서 찾아본 적이 있다.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사람의 뇌는 원래 자기 생각, 자기 감정, 자기 해석 쪽으로 먼저 움직인다고 한다. 남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기보다, 내 기준으로 먼저 받아들이고, 내 경험으로 번역하고, 내 감정으로 반응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가 말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사실 듣고 있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다음 말을 준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기 안의 소리가 너무 커서 남의 말을 끝까지 받지 못하는 것. 어쩌면 듣기의 어려움은 성격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더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오히려 조금은 편해졌다. 내가 유독 부족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원래 인간은 듣는 것보다 말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더 분명해진 것도 있었다. 원래 어려운 일이기에, 경청은 의식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절대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군 생활을 할 때 만난 한 후배가 있다. 그 친구는 유난히 말이 없었다. 누구와 대화를 하든 대부분 상대방의 말을 들었다. 과장 없이 말하면, 대화의 90퍼센트는 듣고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 말을 오래 들어줄 수 있을까 싶었다. 나 역시 그 친구에게 내 힘든 이야기와 속내를 꽤 많이 털어놓았다. 어느 날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다. 너는 왜 그렇게 사람 말을 잘 들어주냐고.


그 친구의 대답은 뜻밖에도 아주 단순했다. "그냥 딱히 할 말이 없어서요." 그리고 한마디를 더 붙였다. 사실 남이 말할 때 귀를 기울여 듣는 게 아니라, 딴생각을 할 때도 많다고. 공감하려고 애쓰는 것도 아니고, 굳이 이유가 궁금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조금 허탈했다. 나는 그 친구를 타고난 경청의 고수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본인은 그저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 대충 듣는다고 말하는데도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술술 꺼냈다. 상처도 꺼내고, 비밀도 꺼내고, 속마음도 꺼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사람은 꼭 완벽한 공감을 받아서 말을 더 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내 말을 끊지 않는 사람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계속하게 된다는 사실을. 듣는다는 것은 단지 귀를 기울이는 태도만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주는 일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조금씩 경청이 익숙해졌다. 재능은 아니었다. 훈련의 결과였다. 오래 걸렸다. 이제는 예전보다 사람들이 내게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한다. 가벼운 고민부터 쉽게 꺼내기 어려운 상처까지 조심스럽게 털어놓는다. 그럴 때면 한 가지를 실감한다. 사람은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을. 동시에 또 하나를 느낀다. 경청은 따뜻한 능력이기도 하지만, 무서운 능력이기도 하다는 것을.


잘 듣는 사람은 상대의 기분을 읽을 수 있다. 약점도 보이고, 아픔도 보이고, 무엇에 흔들리는지도 보인다. 그래서 경청은 관계를 좋게 만드는 기술인 동시에, 잘못 쓰면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힘이 된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데 쓸 수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를 조종하는 데 쓸 수도 있다.


같은 칼이라도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일 수도 있고, 다치게 하는 데 쓰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경청은 미덕이지만, 그 자체로 선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의도로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나는 경청을 연습하면서 의도적으로 말을 줄이기 시작했다. 대신 질문을 많이 했다. 사람은 질문을 받으면 답하려는 습성이 있다. 침묵 앞에서는 버티지만, 질문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속을 꺼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면, 상대가 더 많이 말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때로는 그 사람도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감정이 나왔고, 때로는 그 사람의 깊은 결핍이나 욕망이 드러났다. 경청은 그렇게 사람의 표면이 아니라 안쪽을 보게 만든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경청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됐다. 사람의 말을 오래 듣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반복해서 듣는 말은 내 안으로 스며들고, 강한 감정이 담긴 말은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흔든다.


목사님이나 스님, 혹은 강연을 하는 연사들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누군가가 오랜 시간 자신의 생각과 언어를 쏟아낼 때, 듣는 사람은 단지 정보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세계관 안으로 잠시 들어가게 된다. 잘 듣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무방비로 오래 듣는다는 것은 때로 내 판단의 주도권을 잠시 넘겨주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경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술이 아니라 상태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들으면서도, 그 말에 무조건 휩쓸리지 않는 상태. 공감은 하되 휘둘리지는 않는 상태. 귀는 열어두되 중심은 잃지 않는 상태. 아마 내가 군대에서 만났던 그 후배도, 의도했든 아니든 그런 상태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남의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것이 자기 삶 전체를 흔들게 두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돌이켜 보면 경청 역시 세상의 모든 이치와 닮아 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나는 한때 경청을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연습해 보고, 익혀 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래 받아내 보니 그 안에도 힘이 있었고, 위험이 있었고, 책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깨달음은 머리로 오는 게 아니라 몸으로 부딪힌 뒤에야 온다. 책에서 읽은 경청과, 삶에서 겪은 경청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깨닫고 싶다면 먼저 해봐야 한다고. 경청이 좋다는 말을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내 말을 줄이고 남의 말을 끝까지 받아내 보는 경험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행동은 늘 불편하지만, 그 불편을 지나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사람은 늘 자기만의 작은 진실 하나를 얻게 된다.


경청도 그랬다. 사람을 얻는 기술인 줄 알았는데, 끝내 가르쳐 준 것은 사람보다 먼저 나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지금까지 글쓰는 재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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