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도 제자리인 당신에게

많이 읽는다고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by 재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살아왔다. 책을 읽으면 성공한다는 말도 함께 들었다. 그 말이 맞는지 틀린지는 여전히 모른다. 다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있다. 그 말 덕분에 지금까지 책과 함께 살아오게 되었다는 점이다.


술을 끊고 나서야 머리가 조금씩 맑아졌다. 안개 속에 갇혀 있던 전두엽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고, 예전보다 문장이 읽히기 시작했다. 문해력이라는 말이 꼭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전과는 달랐다. 그렇게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어느새 900권의 책이 쌓였고, 600편이 넘는 글을 써 내려갔다.


성공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읽는 행위는 지식이 아닌 ‘인계점’을 채우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권수가 아니었다.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가 아니라, 읽은 내용 가운데 무엇이 마음을 울렸는지, 그리고 그 울림을 삶에 어떻게 적용했는지가 훨씬 중요했다. 책 한 권이 인생을 하루아침에 뒤집어 놓는 일은 거의 없다. 좋은 문장 하나를 붙들고 생각이 조금 달라지고, 그 생각 때문에 행동이 조금 바뀌고, 그 행동이 반복되며 습관이 되는 것. 결국 삶의 변화란 그런 식으로만 오는 것 같다.


관점이 바뀌면 해석이 달라진다. 해석이 달라지면 선택이 달라진다. 선택이 달라지면 환경이 달라진다. 그리고 사람은 결국 자신이 머무는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삶이 바뀐다는 것은 어쩌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해석의 방향이 바뀌는 데서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많이 힘든 일이다.

나 역시 활자가 거부감 없이 다가오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젠장, 5년이나 걸렸다.

아니, 5년밖에 안 걸렸다.

생각은 이렇게 달라졌다.


어린 시절 충분한 기초를 쌓지 못했고, 삶도 엉망으로 흔들렸던 사람에게는 그 정도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인계점이다. 처음에는 버겁고 낯설고 손에 잡히지 않다가도, 어느 시점이 지나면 갑자기 익숙해진다. 익숙함은 재능보다 반복의 편에 선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을 믿는다.


페이지를 정복하지 말고 메시지를 사냥하라.

나의 독서법은 정독에서 다독으로, 그리고 이제는 필요한 문장을 선택해 읽는 '메시지 독서'로 변했다. 지금에 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책이라고 해서 모든 문장과 모든 단어가 다 똑같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몇 문장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책이 나에게 던지는 단 하나의 메시지다. 작가가 끝내 독자를 설득하고 싶었던 그 핵심. 그 이야기를 알아차리기만 하면 굳이 한 권을 다 읽지 않아도 괜찮다. 독서란 페이지 수를 정복하는 영토 확장 전쟁이 아니라, 내 삶을 구원할 단 하나의 단서를 붙잡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고전은 예외다. 몇백 년 동안 사람들에게 선택받아 살아남은 메시지는 오래 끓인 국물처럼 진하다. 『어린 왕자』를 대하는 태도가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책이 변해서가 아니라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 상처를 겪으며 버텨낸 만큼 관점이 달라졌고, 그 밀도만큼 문장이 깊게 읽힌다. 어떤 책은 다시 읽을 때 비로소 처음 읽히는 경우가 있다.


마침표가 아닌 ‘행동’으로 끝나는 독서.

이제 나는 책 권수를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묻고 있다. "그래서, 어떤 문장이 나의 삶에 들어왔는가?" 무엇이 너의 생각을 흔들었고, 무엇이 나의 행동을 바꾸었는가. 독서는 많이 읽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는 문장을 알아보는 감각이다.


힘겨운 시간 속에서 책은 내게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세상의 지혜가 나에게 "이렇게 살아보라"고 조용히 알려주는 나눔이었다. 그 덕분에 세상에 맞고 틀림이 존재한다면, 그 경계가 어디쯤 놓여 있는지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독서는

처음엔 정독이었다.

그다음엔 다독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 삶을 움직이는 문장을 골라 읽는다.


당신을 바꾸는 것은 당신의 눈을 스쳐 지나간 수만 개의 단어가 아니다. 당신의 심장에 박혀 끝내 행동을 이끌어낸 단 하나의 문장이다. 결국 바뀌는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 문장 하나를 붙들고 움직인 사람이다. 당신의 심장에 박힌 그 한 문장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궁금하다.


이 글이 당신의 독서 인생에 작은 이정표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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