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성취를 경의로운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
마흔넷, 목욕탕에서 내 식스팩을 본 친구들은 부러운 눈으로 "나도 내일부터 운동한다"고 쉽게 뱉는다. 나는 그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응원을 건넨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한다.
‘글쎄, 쉽지 않을걸.’
내가 그들보다 잘나서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내일’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술을 끊고 매일 운동장을 달리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던 고통의 시간들, 무너진 뇌의 회로를 다시 세우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활자와 씨름했던 무수한 날들을 그들은 모른다. 그저 나를 자신들과 동일한 선상에 두고 ‘쟤가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는 막연한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내 친구가 책을 냈는데,
글쎄 대박이 나서 돈을 왕창 벌었대."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그 친구와 나를 비교한다. 아무리 뜯어봐도 내가 그보다 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왜 저런 행운은 내가 아닌 그에게만 가는 걸까 억울해지기도 한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믿거나, "그 친구가 했으면 나도 할 수 있다"며 가벼운 도전을 결심한다.
이 문장은 정말 단순하다. ‘내 친구가 책을 냈고, 대박이 났다.’ 주어가 있고 행위가 있으며 결과가 선명하다. 하지만 이 짧은 문장에는 치명적으로 빠진 것이 있다. 바로 '과정과 시간'이다. 타인의 성공이 가볍게 보이는 이유는 그 결과를 얻기 위해 지불한 지옥 같은 시간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공의 결과치는 누구나 소비하지만, 그 과정의 고통은 아무나 감당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면 그 결과치를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그 사람만이 통과해온 숭고한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위인전을 읽으며 누군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저 사람처럼 저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는 솔직한 인정에서 오는 경의로움이다.
상위 몇 퍼센트에 드는 것이나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을 통과하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그 일을 끝내 해내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갈아 넣고, 치열하게 애썼던 그 '마음'을 봐야 한다. 타인의 성공이 운처럼 보인다면, 당신은 아직 그 길을 걸어볼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세상에 쉬운 길은 없다.
동시에, 가지 못할 길도 없다.
할 수는 있다. 이룰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900권의 책을 읽고 3,000km를 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진리는 이것이다. 모든 위대한 결과 뒤에는 반드시 그 무게만큼의 '시간의 지불'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타인의 결과만 보며 부러워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의 문장에서 생략된 ‘과정’이라는 빈칸을 채워보라. 그 빈칸을 채울 용기가 없다면 당신의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쉬운 길은 없다. 하지만 그 길을 걷기로 결심한 순간, 삶은 비로소 단단해진다.
이 글이 당신의 막연한 다짐에 묵직한 질문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기록하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