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는 조금 조용하게 흘러갔다. 무료하기도 했고, 따분하기도 했다. 며칠 뒤에 있는 한국사 시험을 조금 들여다보았고, 아점으로는 고구마와 계란, 사과를 먹었다. 저녁 무렵엔 문득 순댓국에 소주 한 잔이 생각났다. 하지만 요즘은 술을 마시면 2~3일간 숙취와 컨디션 난조에 시달리기 일쑤라 억지로 참았다.
결국 라면을 끓여 먹었고, 배가 부르니 술 생각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렇게 평온하게 흘러간 하루였지만, 이상하게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이유는 딱히 없다. 오히려 이런 평온이 축복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그런 고요함이 막막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늘 문제의 연속이었다. 그 문제들을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저만치 흘러가 있었다. 누군가는 부러워할 만한 나의 하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가 한 살씩 더해질수록 나는 점점 더 의도적으로 고립을 택하고 있는 것 같다. 만날 사람은 줄어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나지 않으려는 쪽에 가깝다.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누굴 만나는 게 괜히 귀찮고,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억지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다. 집필 중인 책을 써도 되고, 다시 한국사 문제집을 펼칠 수도 있지만, 어쩐지 아무것도 하기 싫다. 도파민에 문제가 있는 건가.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데, 나도 어쩌면 내가 만든 굴레에 스스로 빠져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오늘 하루가 완전히 무의미했던 건 아니다. 가끔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고, 그 덕에 순간적으로 신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그냥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런 날로 정하기로 한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허락을 내린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 속에 산다. 조금만 멍하게 있어도, 조금만 쉬어도, 마치 세상에 뒤처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오늘도 열심히 앞서 나가고, 누군가는 또 무언가를 이뤄내지만, 나는 라면 한 그릇 끓여 먹고 하루를 보냈다.
그렇다고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오늘이라는 하루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행사한 것뿐이다. 이런 날이 필요하다. 바쁘게 달리는 날엔 절대 들리지 않던 내면의 목소리가 이런 고요한 날에야 들려오기 때문이다. 내 안에 나직한 목소리가 말해준다.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분명 내일은 또 달라질 거다. 다시 글을 쓰고, 다시 문제집을 펴고, 다시 무언가를 쌓아나가겠지. 하지만 오늘은 그냥 멈추기로 했다.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는 하루. 다시 충전하고 감정을 비워내는 그런 시간. 내일이 두렵지 않다면, 오늘은 조금 비워도 괜찮다. 그런 날이 있어야 우리는 다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
여기까지다.
지금까지 글 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