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고, 말해줘도 될까요?

by 재윤

그날 밤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바닷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고, 낚싯대는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텐트 근처엔 술기운 섞인 웃음소리만 낮게 퍼지고 있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촌형은 그곳에서 한 달을 버틸 생각이었다.


텐트를 친 곳과 화장실은 대략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밤이 되면 생각보다 멀게 느껴지는 거리였다. 형은 조금이라도 편해지자는 마음으로 전동 킥보드를 챙겨갔다. 그 정도의 선택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지인들과 술을 한잔했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모두 얼큰하게 취해 있었고, 기분은 한 컷쯤 더 올라가 있었다. 형수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하고 텐트를 나섰다.


몇 분이 흘렀다. 조금 늦는다 싶었지만,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촌형은 형수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 곧장 텐트로 들어갔겠거니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다 한 사람이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 쪽에 쓰러져 있는 킥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이상했다. 너무 이상했다. 다가가던 발걸음이 멈췄고, 곧이어 외침이 터졌다.


“혜수 씨가 쓰러져 있어요!”


형수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뒤통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의식이 없었다. 119가 불렸고, 사이렌 소리가 밤공기를 찢으며 다가왔다. 그 후 한 달. 형수는 지금도 중환자실에 있다. 정확한 병명은 듣지 못했지만, 뇌출혈이라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다.


얼마나 세게 머리를 부딪혔는지, 충격은 뒤통수에서 시작해 눈까지 번져 있었다. 눈은 충혈돼 있었고 얼굴은 심하게 부어 있었다고 했다. 차마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고.


불현듯 일어난 사고였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사고.


작년 시청역 인근에서 차량 한 대가 돌진해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때는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기억은 조금씩 닳아갔다. 살다 보면 그렇게 된다. 당한 사람만 억울하고, 아무리 원망해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형수의 사고를 떠올리며, 나는 이상하게도 ‘잘못’보다 ‘이후의 마음’이 먼저 생각났다. 술을 마신 것도, 킥보드를 탄 것도, 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억울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을까. 적어도 “많이 놀랐겠다, 많이 아팠겠다”는 위로 한마디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잘못과 고통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

책임이 있다고 해서, 위로받을 자격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 생각 끝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힘든 시간을 오래 혼자 견뎌야 했던 내 친구였다.


내 친구는 유학생 시절, 정말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그 고통으로 몇 년을 고생했다. 영화 〈세계의 주인〉을 보다가 문득 그 친구가 떠올라 함께 보자고 권했다. 영화를 보던 중, 말없이 흘러내리는 그 친구의 눈물을 보며 나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친구는 엄마와 오래 다퉜다.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엄마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점을 계속 설명했다고 한다. 이성적으로 보면, 엄마의 말이 맞다.


내 마음을 울렸던 책 『이 진리가 당신에게 닿기를』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사람이 죽은 뒤, 잠시 남은 시간 동안 문지기가 인생의 영상을 보여준다. 그 영상 속에서 ‘내가 알고 있던 엄마’, ‘내가 믿고 있던 아빠’, ‘내가 생각했던 남편’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제야 우리는 각자가 얼마나 다른 세계를 견디며 살아왔는지를 깨닫는다.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잘 모른다. 말을 해도, 망각이라는 장치 때문에 금방 잊어버린다. 그래서 보여지는 모습과 들리는 말 몇 마디만으로 상대를 이해했다고 착각해 버린다. 그 친구의 엄마에게도 분명 많은 고난과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친구가 모르는 것도 아니다. 부모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아주 큰 친구다.


그럼에도 그 친구가 사과를 받고 싶어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은 그렇게 끔찍한 일을 겪었는데, 아무도 “미안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는 좌절감. 분명 잘못된 일이 있었는데, 사과받을 대상조차 없다는 공허함.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 엄마에게서 “너도 많이 힘들었구나” 그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

그게 전부였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있다.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일이 설령 스스로의 선택에서 비롯된 일이라 해도, 마음속 응어리는 누군가의 공감을 기다린다. 그 사람들에게, 부족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내가 정말 미안해!


이 말이,

당신이 오래 품고 있던 마음에

조금이나마 닿기를 바란다.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