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면 걷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 때가 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지친다. ‘기가 빨린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말일까.
그럴 때면 혼자 있는 시간이 간절해진다. 사람들 속에서 벗어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가끔은 차를 타고 혼자 이동하는 그 적막함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진다. 분명 차 안에는 나 혼자뿐인데, 신호에 걸려 수많은 차들 사이에 멈춰 서 있으면 ‘아, 나도 이 많은 사람들 중 하나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스며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찾아오면 또 사람이 그리워진다.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상처받고, 그 상처를 결국 다시 사람을 통해 치유받는다. 도망치고 싶다가도, 돌아가고 싶어지는 이 반복. 아마 이 모순 속에 살아가는 게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을 100%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듯, 나 또한 누군가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에게 실망하고, 또 사람을 그리워한다. 사람이 지겨우면서도 사람이 필요한 삶. 어쩌면 그게 너무 정상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이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고, 교육을 받고, 일을 하며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공동체 속에서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건 어쩌면 아주 본능적인 욕구일 것이다. 그 흔한 단톡방 하나에도 소속감을 느끼는 걸 보면 말이다. 남들보다 잘나 보이고 싶고, 크든 작든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 굳이 ‘관종’이 아니어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 마음을 다루는 방식이 서툰 편이다. 나는 유독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같이 있으면 피곤해하면서도, 막상 혼자가 되면 또 같이 있고 싶어진다. 감정을 쓰는 게 너무 싫어서 예전에는 술에 기대었고, 요즘은 드라마 속으로 숨어든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안에 빠져 있으면 외롭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남는다. 살아낸 시간이 아니라 그냥 흘려보낸 시간 같아서다. 사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의미 있는지는 여전히 어렵다. 쇼펜하우어도, 니체도 인생은 결국 혼자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오늘처럼 혼자 잘 지낸 하루도 어쩌면 꽤 의미 있는 하루일지도 모르겠다. 청소를 했고, 빨래를 했고, 맛있는 김치에 밥도 잘 먹었다. 커피도 좋았고, 영어 공부도 조금 했다. 솔직히 말하면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했다’고 마침표를 찍어본다. 이 하루들이 어딘가에 쌓이고 있다는 작은 믿음 하나를 남겨두면서.
요즘은 잠드는 시간도 늦어졌다. 어제는 새벽 1시가 다 되어 잠들었고, 평일에도 자정이 훌쩍 넘는 날이 많다. 아침은 무겁고, 몸도 그렇다. 뭔가 익사이팅한 게 없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는 걸까.
요즘 유독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이 부족한 하루였던 건 아닌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설령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나는 나름대로 오늘을 잘 보냈다.
오늘도 썩 괜찮은 하루는 아니었다. 하지만 괜찮지 않은 마음으로도 마침표를 찍어볼 수는 있었다. 이 정도의 하루를 살아낸 나에게, 지금은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도 괜찮지 않아도, 괜찮았다고.
오늘도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