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한국사를 공부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딱히 어디에 써먹을 계획도 없고, 합격한다고 해서 내 삶이 눈에 띄게 달라질 것도 없다. 그런데도 책을 펼쳤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때문이었다. 이따금 찾아오는 정체된 기분, 공허함, 그것들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그 끝에 도달한 것이 한국사 시험이었다. 시험은 5월 중순,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준비를 잘하고 있느냐고? 글쎄, 나름이다.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보고 있지만, 열정이 넘친다기보단, 그저 묵묵히 흐름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 시험에 붙는다고 해서 내 인생이 달라질까?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단순하다. 도전하고 싶었다. 그저 그렇게. 이유가 없다면 이유가 되는 마음. 삶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무언가를 버티고 있는 것 같은 이 시기 속에서… 난 내 안의 공허를 해소하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내 삶에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일이 많고, 신경 쓸 것도 많고, 책임져야 할 것도 많은 시기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이 텅 비어 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 참으로 나를 잘 설명해 준다. 가진 것도, 할 일도 많은데, 뭔가가 비어 있는 느낌. 쉽게 말하자면, 삶의 톱니바퀴는 잘 돌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 탄 나는 점점 멀미가 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자꾸 여행을 떠올린다. 어딘가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싶다. 익숙함에 너무 오래 머물다 보면, 나라는 사람은 쉽게 무뎌진다. 많은 이들이 '쉽다'는 것을 피상적으로 이야기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말하는 ‘쉽다’는, 적어도 수개월, 때로는 수년을 버텨낸 뒤에야 나오는 말이라는 걸. 그렇게 익숙해지고, 결국 지루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 공부는 꽤나 신선하다. 낯선 시대, 낯선 이름들, 낯선 전쟁들. 익숙한 현재에서 잠시 벗어나, 그 먼 과거를 거닐다 보면 묘하게 현실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참 감사한 시대를 살고 있구나.’
세상은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또 다른 전쟁터일지라도, 총칼 없는 전쟁터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수없이 많은 정쟁과 반목, 끝없는 다툼과 전쟁이 이어졌던 과거. 수많은 이들이 권력과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 숨 쉬고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롭다.
내가, 우리가, 전쟁터에서 화살받이나 칼받이로 끌려가지 않아도 되는 지금 이 현실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누군가의 오만한 판단 하나로 수천 명의 목숨이 스러지던 시대가, 분명 있었다.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이유조차 모른 채 생명을 잃는다. 우리는 그 위험에서 벗어난 안전지대에 있다.
그러니,
오늘에 무조건 감사하자.
그렇게 이어진 당신과 나의 삶은 축복이다.
오늘도 글 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