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레슨이 필요해~
추석의 시작이 즐겁지 않은 사람은 수험생, 취준생이나 결혼하지 않은 미혼만은 아니다.
결혼했으니 며느리 노릇 때문 만도 아니다.
나는 나의 원가족이 화근이다. 오히려 시댁은 양반이어 어라~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우리 부모는 착취형이다.
지속적으로 뭔가를 바라고 내가 해준 것을 좋아하시기보다 더 바라는 편이다.
그렇다고 자녀에게 해주는 것은 별로 없으며 차단하는 편이다
(가급적이면 못하게 한다, 그걸 뭐 하려 하냐, 거기를 왜 가냐는 식- 왜? 돈이 든다)
나는 내가 너무 아프다. 이런 부모 밑에서 오랜 시간을 지냈는데 몰랐다.
나는 되려 부모님께 더 많이 해주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 비슷한 마음이 있다.
그래서 꽤 오래 나는 내가 꽤 착한 딸인 줄 알았다. 이제 보니 난 상등신이었던 거.
내가 상담 대학원에 다니지 않았다면, 상담을 받거나 하지 않았다면 평생 모를 뻔했다.
나는 성경말씀에 따라 부모공경에 더욱 사활을 걸며 나를 쳐 복종시킬 뻔했다.
하지만 알게 된 이상 이대로 나를 방치할 수 없다!!!
이래서 머리가 커지는 것을 위에서는 싫어하지.. 모르고 순종적인 게 얼마나 편해?
그런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 모를 때는 효녀인 줄 착각하고 부모님께 해드리면 그만이지만,
부모의 착취를 알고 나니 그렇게 살 수 없다 말이다.
이럴 때 무서운 건 습관이다. 하던걸 안 하면 찝찝하고 진짜 죄를 짓는 느낌이다.
에효.... 부모 나이가 70이 넘었는데 이제 와서 뭐 하나? 싶은 마음.
효도는 이미 물 건너 갔는데 불효도 하는 느낌. 그것도 나를 살리겠다고! 그러니 더 못할 짓 같은..
나를 살린다는 것은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자유해지는 것인데,
그러려면 경계-바운더리가 필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구분이 필요하다.
부모의 더한 요구대로 하지 않고 나 자신을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
보름달이 밝디 밝게 뜨기 전에 내 마음은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찬다.
추석이 그렇다. 뭘 가족끼리 모이라고 해서는.
명절이 주는 중압감이나 외로움 고통 슬픔을 그대는 아는가?
이것도 전통이라는 습관인가? 그렇다면 유감이다.
추석이 즐겁고 넉넉하기만 하랴. 빈부격차는 물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도 있다.
착취당한 마음에는 억압뿐이다. 좋은 것에는 다 눌러져 있고, 안 해도 될 것들은 활성화되어 있다.
이를 테면 나 자신에게는 억압되어 야박하고 부모에게는 분간 없이 과하다.
엄마 옷은 턱턱 사줘도 나한테는 티 한 장도 아깝다. 나 자신은 없고 부모만 중요해졌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갖고 싶은지... 나는 모른다.
서두에 말했듯 우리 엄마는 내게 양말도 안 사준다. 엄마 왈 원래 자식이 다 하는거란다.
어머니, 나도 때론 어머니가
나를 불러서 백반 한 끼라도 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내가 늘 부러운 사람은 부모가 멀쩡히 자녀는 사랑하는 부모밑에 자라난 사람이었다.
그냥 부모이기에 기대고 안기고 투정 부리고 받고 싶은 감정.
어색하고 잘 모르겠다. 모르는 게 투성이다.
갑자기 여기까지 튀었다. 아.... 확실하다. 이것 봐! 나는 구출이 필요하다.
구조대는 나 자신이라는 게 미친 듯 서글프지만...
추석을 보내는 데는 있어서 정신부터 똑바로 차리는 게 먼저다.
이건 첫 번째 레슨~ 잘 새기거라.
습관대로 부모에게 마음과 정성을 바치지 말고 약간의 거리를 두라.
두 번째 레슨 욕먹을 각오하고 행동하고 욕을 먹어라.
세 번째 레슨 내 마음을 돌봐라.
네 번째 레슨 다시 첫 번째로 돌아가라.
내가 뭐 하는 짓이지? 싶을 때마다.
잊지 마라. 그대는 나 자신을 억압과 고통에서 구출할 유일한 구조대원이다!
무사하라. 상처받아온 나의 정신이여.
굳건하라. 자신을 구출하기로 마음먹은 정신이여.
승리하여라. 진정한 나의 행복과 자립 해방을 위하여.
준비되었다. 출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