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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6시간전

월 200만 원의 영어유치원은 대체 누가 보낼까?

돈이 많아서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게 아니다.

4세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11월은 대학 입시만큼이나 긴장되는 기간이다. 바로 내 아이가 5살부터 7살까지 3년 간 다닐 유치원 입학이 결정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6살, 7살 때도 유치원을 보낼 수 있지만, 그때는 모집인원이 워낙 적어, 대규모로 원생을 뽑는 5살 때 유치원을 못 들어가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어린이집을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매년 가을, 4세 아이를 둔 부모들은 가슴 졸이며 유치원 입학전쟁(다른 말로 '눈치게임')에 참여한다.


큰 아이가 내년에 5살을 앞두고 있어, 그동안 풍문으로만 들었던 유치원 입시에 참여했다. 내년부터는 아이가 셋이니, 원비가 저렴하고 집에서 가까운 국공립인 단설유치원이 마음속 1순위 원이었다. 영어유치원, 놀이학교라고 불리는 유아 어학원의 존재도 알고는 있었지만, 원비가 매월 최소 150만 원에서 200만 원이라는 말에 바로 마음을 접었다. 분기별 200만 원도 부담스러운데, 매월 200만 원이라니. 내 상식선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영어유치원은 고소득자 부모들이나 보낼 수 있는, 귀족 유치원이라고만 생각했다.


목동에 살 때는 단지 앞으로 영어유치원 스쿨버스가 자주 왔다 갔다 했다. 폴리, SLP, 정이조 어학원 등 그 이름도 다양했다. 목동이라는 동네가 워낙 학군지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지나가는 영어유치원 스쿨버스를 보며 '아, 다들 5살부터 공부를 시키는구나' 싶었다. 그곳의 부모들이 자녀를 영어유치원 보내는 게 이상하게 보일 것도 없었다. 목동은 평당 억 씩 하는 부촌에, 자녀 교육 네트워크가 똘똘 뭉친 동네 아닌가.




그런데 영어유치원 스쿨버스가 이질감 있게 느껴졌던 건 최근 서울 외곽지역으로 이사를 와서부터였다. 이곳은 목동에 비해 집값도 1/5 수준이고, 학업성취도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정확히는 평균보다 낮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매일 아침마다 영어유치원 스쿨버스가 와 아이들을 싣고 갔다.


노란색 버스에 아이를 태우고 가면, 그 자리에 있던 엄마들도 삼삼오오 자리를 떠났다. 다들 운동복 차림에, 두꺼운 파카를 움켜쥐고 있는 걸 보니 워킹맘으로 보이진 않았다. 엄마 둘 이상 모이면 자녀교육에 대한 얘기를 했으며, 한 카페에서는 엄마가 초등학교 1학년쯤 돼 보이는 아들의 영어공부를 봐주고 있었다. 집값은 목동의 반의 반도 안 되지만, 교육열만큼은 이곳도 목동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광경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목동에서는 용의 꼬리, 아니 용의 발톱쯤 됐어도 여기서는 뱀의 머리는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5살 아이의 교육비로 200만 원씩 턱턱 지출하는 집이 꽤 많은 걸 보며 현타가 왔다. 순자산 10억 이상 있어도 영어유치원은 언감생심인데... 대체 이 사람들은 얼마를 버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월 200만 원씩 아이 교육비로 지출하려면 매월 얼마를 벌어야 할까?'하고 혼자 생각해 봤다. 전체 소득에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0~20% 된다고 쳤을 때, 매월 최소 천만 원은 벌어야 영어유치원을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다.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집 = 월 천만 원 이상의 고소득 집(?)
 


남편에게 여기가 집값은 저렴해도 고소득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집이 많으며, 영어유치원을 보내려면 월 천만 원 이상 벌어야 가능하다는 논리를 덧붙이며 말이다. 그러자 남편은 내 말에 전면 반박했다. 그는 부모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게 아니라고 했다.


영어유치원을 보내고 말고는 소득이 아닌 부모의 가치관, 즉 지출에 대한 우선순위 차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남편 말에 일리가 있었다. A와 B에게 같은 돈이 있다고 해도, 그 돈을 사용하는 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영어유치원을 보내려면 어느 정도 생활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여유'도 결국 상대적인 개념이다. 


월 1,000만 원을 버는 집과 월 500만 원 버는 집 중, 당연히 월 1,000만 원 버는 집이 여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집 속사정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소득이 많아도 지출할 게 많아 영어유치원 월 200만 원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고, 비록 소득은 적지만 그 절반을 자녀 교육비로 떼어줘도 이를 자녀에 대한 사랑과 투자라고 생각하며 아깝지 않다고 느끼는 부모들도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영어유치원은 천 개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런데 30~40대 대한민국 평균 맞벌이 소득이 연봉 5천만 원, 세후 368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영어유치원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200만 원을 '까지껏'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월 천만 원 이상의 소득자는 대한민국 상위 1%밖에 안 된다는 사실까지 고려한다면,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돈이 많아서 보내는 게 아닌, 가계 경제에 크게 부담은 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보낸다고 볼 수 있는 거였다.


월 천만 원 고소득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낼지 말지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는 완전히 잘못 설정된 전제였다.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말고는 소득보단 부모의 동기가 더 크게 작용했다.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빚을 내서라도 보내는 부모도 분명 존재하니 말이다.


그러니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집과 보내지 못하는 우리 집을 비교하며 위축될 필요도, 영어유치원에 집 아이가 일반유치원에 우리 집 자식보다 앞 선 출발선상에 서 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 집과 우리 집의 교육관과 우선순위가 다른 것뿐이니 말이다.


영어유치원에 안 보냈다면, '안'보낸 자신의 교육관을 믿으며, 영어유치원을 보내지 않음으로써 세이브한 자원으로 아이에게 다른 지원을 해주자. 아이가 좋아하는 미술학원을 보내주던가, 맛있는 케이크를 사주며 말이다.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못했다고 마음 아파할 필요도 없다. 굳이 무리해서 그곳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도 밝고, 건강하고, 똑똑하게 잘 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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