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내년 육아휴직 의사를 밝혔다. 얼마나 할 계획이냐는 말에 7년 정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7년
이제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초장기 육아휴직 계획에 담당자는 '정말이냐?'며 흠칫 놀래했고, 주변 동료들은 연신 부럽다는 말을 내뱉었다. 육아가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회사를 7년이나 안 다닐 수 있다는 게 동료들 눈에는 좋아 보였던 것 같다.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회사 문 밖을 나섰다. 겉은 웃고 있었지만, 속은 비장함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근무한 기간보다, 더 긴 시간 휴직하려고 보니, 휴직이 아닌 이직의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더 긴 시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고, 집을 돌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 두근거렸다. 내 인생의 새로운 스테이지가 열리고 있었다.
직장인 엄마에서, 직업인 엄마로.
초장기 육아휴직 계획에 부러워하는 반응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그중 일부는 나의 커리어를 걱정해 줬다. 곧 승진을 앞두고 있으면서 7년 뒤에 돌아온다는 게 너무 바보 같다며, 승진하고 다시 휴직하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아마 1년 전에 이 말을 들었다면 아마 '그럴까요?" 하며 냉큼 그 말대로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에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그런가요?" 하며 웃으며 지나갔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시간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장소,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하는 사람에게 말이다. 때에 따라 그게 인생의 밀도를 높여주기도 하지만, 어떨 땐 잘 못된 방향으로 인생을 이끌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바로 회사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 묶여 지내다 보면, 회사에서의 직급과 업무가 내 인생 전체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소소하게 챙겨야 할 집안일들은 깜빡하면서, 회사 프로젝트는 A부터 Z까지 다 기억하고, 승진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맹목적으로 회사에 열과 성을 쏟느라, 아이들 커가는 걸 놓친다. 물론 누군가에겐 승진이, 회사가 인생의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 하지만, 훗날 회사를 그만둔 뒤 가정으로 돌아왔는데, 나를 반겨주는 이가 없고, 돌이켜 보고 싶은 추억이 없다면.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 씁쓸한 허무함만 남는다면, 과연 잘 살았다고 볼 수 있을까?
일이 인생에서 필요한 건 맞지만,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과 상황을 해치우느라,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잊고 지낸다. 마치 고장 난 나침판을 들고,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항해하는 목적지 없는 배처럼 말이다...
목적 없이 떠도는 배들의 말로는 이미 정해져 있다. 파도에 휩쓸려 종적을 감추거나, 해적선에게 약탈을 당하는 것. 훗날 우리 인생도 떠돌이 배와 같은 말로로 끝맺음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동안 내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던 곳에서 잠시 떨어져 지금 내가 원하는 인생의 방향대로 잘 가고 있는지를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나에겐 둘째 출산 후 1년의 휴직기간이 쉼표와 같은 시기였다. 회사와 떨어져 지내다 보니, 내 인생엔 회사보다 중요한 가치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중 1등은 바로 가족과 아이들이었다. 중요 가치를 직시하니, 휴직 결정이 어렵지 않았다. 몇 번이고 7년 뒤 회사로 돌아가는 상황을 상상해 봤지만, 전혀 슬프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동기가 팀장으로 있고, 내가 그 안에 팀원으로 있는 상상, 후배가 나보다 더 높은 직급에 있는 상상을 해봐도 지금 결정에 어떠한 타격을 주지 않았다.
원래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게 진리다. 두 계급 승진과 6년 간의 급여를 잃는 대신, 엄마가 필요한 기간에 아이들 곁에 있어주고, 남편과 나 자신을 챙기며, 가정을 건강하게 돌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객관적으로 봐도 남는 장사 아닌가? 둘을 잃고, 넷을 얻었으니 말이다. 아마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아이들을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희생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거니 말이다. 희희희희(喜喜喜喜) ^^
'7년의 육아휴직을 어떻게 보낼까?' 계획을 세우다 보면 나도 몰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이왕 하는 휴직, 제대로 잘~ 해보고 싶다. 지금은 살림도, 육아도 열정에 한참이나 못 미치지만, 이것도 7년의 시간 동안 차근차근 잘 배워볼 생각이다.
그렇게 7년의 시간 동안, 엄마라는 역할에 직업의식을 가지고 열과 성을 다하면, 우리 집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또 그 안에서 나는 얼마나 성장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