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젊은 애엄마가 엄마뻘의 도우미 이모님 상대하는 법

산후도우미, 가사도우미, 육아도우미가 불편한 아기 엄마들에게

by 심연

서른에 첫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두 번의 산후도우미와 세 번의 가사도우미 이모님들을 만났다. 첫 아이를 낳기 전에는 두렵기만 한 신생아 육아를 도와주시는 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함께 지내다 보니 도우미 이모님과의 생활이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로 만났다면, 고객의 입장이 전적으로 우선되는 게 맞건만, 서른 살의 젊은 애엄마와 환갑이 넘은 이모님과의 관계에서는 이 기준이 잘 먹히는 것 같지 않았다. 정보의 불균형과 연륜에서 나오는 사람을 다루는 내공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나의 첫 도우미 이모님 경험은 완전히 실패, 아니 패배였다. 내 몸 편하자고 돈을 지불하고, 사람을 쓰는 거였는데, 실제로는 돈은 돈대로 쓰고, 마음고생은 마음고생대로 했다. 중간에 사람을 바꾸고도 싶어도 혹시나 지금 계신 이모님께서 상처받으시지 않을까 싶어 계약한 2주가 빨리 지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말이다.


쓰라린 패배의 쓴맛을 몇 번의 이불킥으로 날려버리고, 나와 이모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봤다. 우리는 돈으로 얽혀있는, 사적인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공적인 관계였다. 이모님을 대할 때 연장자를 향한 존중의 태도는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그분들의 포스에 위축되며 휘둘릴 필요는 없었다.




지금껏 만난 다섯 명의 이모님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봤다. 먼저 내가 만난 분들 중에는 FM대로 해주시는 분이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근무시간이다. 9시부터 18시, 정해진 근무시간이 있음에도 모든 이모님들은 그보다 일찍 퇴근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루 4시간 가사를 도와주시는 이모님은 자신의 업무가 끝나면 말없이 2시간 만에 가버리기도 했고, 첫째 출산 후 만난 산후도우미분은 중간에 휴게시간 한 시간을 쓰지 않는 대신, 한 시간 일찍 퇴근하겠다고 했으면서, 휴식도 취하고, 퇴근도 한 시간 일찍 하는 기이 행동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모님들은 어린 엄마를 어려워하지 않았다.(어려워하는 건 엄마들뿐...) 자신들에 비해 사회경험도 부족하고, 나이도 자신의 딸과 비슷한 엄마들이 이모님들 입장에서는 그리 어려운 고객은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연륜에서 나오는 내공도 충분한데, 수많은 엄마들까지 겪어봤으니, 객관적으로 봐도 젊은 초보 엄마들은 이모님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예전 집에서 받았던 호의를 얘기하며, 우리 집에서도 그렇게 해주길 바라하는 건 기본이고, 웃으며 '편하게 하시라' 다정하게 대해주면, 냉큼 사모님께서 쿨하시다면서 일을 설렁설렁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나중 되니 내가 돈을 주고 사람을 쓰는 것인지, 이모님이 돈도 받고, 사람도 부리는 것인지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성장의 동물이라고, 몇 번의 이모님을 만나다 보니, 나도 나 나름의 이모님을 대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첫 번째는 공적인 관계에 되도록 사적인 감정을 섞지 않는 것이다. 경험상 일로 만난 사이에는 돈만 껴야지, 감정까지 끼면 마음만 상한다. 이모님과 나의 사이는 겉은 촉촉하고, 속은 바삭하게, 겉촉속바로 가야 한다.


두 번째는 이모님의 말대로 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모님은 자신의 뜻대로 상황을 주도하기 위해 엄마에게 여러 이야기를 할 것이다. 집이 멀어서 일찍 퇴근해야 한다는 둥, 예전 집에서는 일찍 퇴근도 시켜주고, 출근하지 않아도 출근한 걸로 쳐주기도 했다는 둥, 센터에서 모니터링이 오면 거절을 해달라는 등 말이다.


그런데 이모님들이 왜 갑자기 예전 집들에서 받았던 호의를 얘기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바로 아기 엄마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나도 해줘야 할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 때문에 원치 않아도 '원래 그런 건가'하는 생각에 이모님의 말에 응해주는 거고, 이모님도 이를 알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거다.


하지만, 그건 이모님만의 생각이다. 만약 계약서와 다르거나 없는 내용을 관례를 들먹이며 행동으로 강요한다면, 이에 휘둘리지 말고 정중히, 웃으며 거절하면 된다. "호호호, 예전 집에서 배려를 많이 받으셨나 보네요!"라고 배려와 권리를 구분 지어주며 말이다.


세 번째. 요구사항과 불편사항을 말할 때는 웃으면서 하기. 요구사항, 불편사항이 있다고 괜히 분위기 잡을 필요 없다.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이모님께 말하면 된다. 처음에는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분께 이런 부탁을 드려도 될까 싶은 적도 있었는데, 업무적인 요구사항과 불편사항을 말하는 건 고객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다. 그리고 요구사항을 듣고 기꺼워하게 생각했던 이모님은 단 한 분도 없었다. 웃으면서 얘기한다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네 번째. 이모님이 너무 마음에 안 들면, 괜히 힘 빼지 말고, 업체에 연락해서 사람 바꿔달라고 하자. 연인과 헤어진 친구를 위로할 때 우리는 흔히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말을 많이 한다. 친구에겐 미안한 얘기긴 하지만, 똥차를 보낸 친구에게 벤츠 남자 친구가 올 확률은 극히 드물다. 사람은 또 같은 사람에게 끌리니 말이다.


하지만 인력업체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똥차 도우미 분이 간 자리에 벤츠 도우미 분이 오신다. 업체에서는 또 다른 컴플레인이 오는 걸 막기 위해 다음 사람은 검증된 사람으로 신경 써서 보내기 때문이다.


지금껏 사람을 바꿔달라고 요청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살림과 근무태도가 엉망인 가사 도우미 분이 가시더니, 화장실 청소만 2시간 이상하는 청소 에이스 이모님이 오셨다. 그러니 아니다 싶으면, 이모님과 실랑이하며 감정 상해할 필요 없이 업체에 연락하자. 돈이 아깝지 않은 이모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다섯 번째. 완벽에 대한 기준을 내려놓으면 모든 게 편해진다. 경험상 내 마음에 쏙 드는 완벽한 사람은 없다. 처음 도우미 이모님을 맞이할 때는 육아도, 살림도 잘 봐주면서 산모케어도 잘해주시는 분을 바랐다. 이게 높은 기준이었다는 건 훗날 여러 이모님을 겪으며 깨달았다.


내 기준이 높으면 업체에서는 괜찮다는 사람을 보내도, 성에 차질 않는다. 99를 잘해도, 1이 마음에 걸려서, 몸도 마음도 다 불편해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그러니 자신이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다른 건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가는 마음자세도 필요하다. 그래야 내가 편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이모님은 참 묘한 관계다. 돈이 껴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갑과 을로 나누기도 애매한 사이말이다. 이모님은 젊은 엄마들의 어려움을 도와주러 오신 고마운 분이기도 하고, 한 공간에서 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니 가족의 한 구성원과도 같은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친밀하면서도, 불편한 우리 사이.


글 속에는 주로 안 좋았던 사례를 많이 언급하긴 했는데, 세상 모든 이모님들이 다 이렇다는 오해는 없길 바란다. 둘째 출산 후 만났던 산후도우미 이모님은 지금까지 생각날 정도로 아이도 잘 봐주시고, 산모인 나도 잘 케어해 주셨던 따뜻하고 고마웠던 분이셨고, 두 번의 가사도우미 분들도 또다시 만나고 싶을 정도로 살림도 잘하고, 인정도 많던 분들이셨다.


<젊은 엄마가 엄마뻘의 도우미 이모님 상대하는 법>이라고 다소 공격적으로 글 제목을 뽑긴 했지만, 이모님은 우리가 상대해야 할 대상이 아닌, 함께 잘 지내야 하는 분이다. 이모님과 나는 돈이 껴있긴 해도,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 관계기 때문이다. 이모님들이 FM대로 하진 않긴 하지만, 이것도 달리 생각해 보면 돌발상황의 연속인 육아와 가사환경에서 융통성을 많이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결국 인간관계를 잘 이끌어 가는 건 돈이 아닌 신뢰며, 신뢰를 만들어 가는 건 시간과 대화다. 처음엔 이모님과의 생활이 불편할 순 있겠지만 서로 지켜야 할 선을 지키며, 상호 존중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그 생활이 마냥 불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직장인 엄마에서, 직업인 엄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