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선 3살부터 성교육을 합니다
최근 초등학생 자녀를 둔 아는 언니들을 만났다가 기함할 얘기를 들었다. 요즘 딸을 둔 엄마들 사이에서는 딸 몸에 피임기구를 삽입하는 일이 잦다는 거였다. 아이들이 성적으로 워낙 빠르고 조숙하다 보니,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말이었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성범죄자는 남자일 거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학교 성교육 시간에 남학생들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위축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어쩌다 여학생들과 가벼운 신체적 접촉이라도 생기면 학교폭력위원회까지 열리는 일도 왕왕 있다고 했다. 정말 딸이든 아들이든 키우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현재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언니는 자신도 나중에 아이 몸에 피임 기구를 삽입할 생각이라고 했고,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언니는 매일 아들에게 여자 아이들에게 장난치지 말라, 뽀뽀하지 말라며 붙들고 교육한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니 괜히 마음이 무겁고 착잡해졌다. 이 얘기들이 나와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득 예전에 아빠가 내게 해줬던 얘기가 떠올랐다. "잠을 못 자도 어릴 때가 키우기가 편해, 아이들이 클수록 부모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니까 고민과 사고의 크기가 커지거든.", 모두 맞는 말이었다.
우리 아이는 안 그럴 거라며 덮어놓고 믿고만 있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말로는 "널 믿어"라고 하면서 몸에 피임기구를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요즘 청소년 첫 성관계 평균 시기가 12살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저 손 놓고 말세라며, 우리 때는 안 그랬다며 혀만 끌끌 찰 수도 없다.
시대의 속도에 발맞춘 변화인지 요즘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부터 성교육을 배운다. 언젠가 첫째에게 모르는 사람이 같이 가자고 하거나 몸을 만지려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니,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안 돼요, 싫어요, 도와주세요"를 외친다며 씩 웃어 보였다.
자신 있게 대답하는 아이 모습에 어린이집에서 많이 배웠구나 싶어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저 암기한 말을 되뇌듯 것 같아 불안감이 들었다. 현실에서는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웃으며 거절하면 괜히 좋으면서 튕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5살, 3살, 그리고 갓 돌 지난 삼 남매를 위해 인생 처음으로 <딸 성교육하는 법>이라는 성교육 책을 읽었다. 지금의 MZ보다 더 빠르고 조숙할, 이른바 '신인류 세대'가 될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엄마가 먼저 성(性) 인식에서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교육시킬까?'라는 마음으로 집어 든 책에서, 난 오히려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게 됐다. 생각보다 난 많이 올드한 여자였다.
책을 읽기 전에는 아이들에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 2차 성징, 그리고 올바른 피임법 정도 알려주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성교육의 진짜 핵심은 올바른 젠더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성적 자기 결정권(성적주체성)과 용기였다. 특히 젠더감수성이 빠진 성교육은 안전의식에 대한 교육 없이 총 쏘는 꼴만 배우는 위험 천만한 일이었다.
여자니깐 핑크, 남자니깐 파랑, 여자들은 인형, 남자들은 로봇, 여자니깐 긴 머리, 남자니깐 짧은 머리 등. 개인의 취향이 아닌 성별로 취향을 나누는 모든 행위가 젠더감수성을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젠더'란 생물학적 성이 아닌, 사회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성을 뜻하며, 여성성과 남성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는 걸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의 나의 행동을 돌아봤다. 혹시 나도 모르는 새에 아이들에게 성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심어주고 있던 건 아닌지 살펴봤다. 그리고 남편과 아이 돌봄 선생님께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 식의 표현을 아이들 앞에서 조심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아이들의 올바른 성 인식을 키워주기 위한 첫 번째 안전기지 구축이었다.
또 성적 자기 결정권을 키워주기 위해 책에서 소개된 대로 스킨십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허락을 구했다. 항상 먼저 안아주고 뽀뽀해 준 엄마가 갑자기 "뽀뽀해도 돼?", "안아줘도 돼?" 하며 물어보니 처음엔 아이들도 흠칫 당황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변화에 금방 익숙해졌다. 허락해 주면 쪽쪽쪽 뽀뽀해 주고, 거절하면 바로 스톱하니, 마치 엄마, 아빠와 얼음땡 놀이하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몸에 넣는 피임기구보다 더 강력한 것은, 스킨십하기 전 허락을 구하고 싫다고 하면 멈춰주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 저자도 말했다시피 가정에서 자기 결정권 훈련을 잘 받은 아이는 상대가 자신에게 억지로 뽀뽀하려 하면, '어? 우리 엄마, 아빠도 나한테 뽀뽀할 때 물어보는 데 쟤는 왜 안 물어보지?' 하는 반발감에 분명한 어조로 "하지마"라고 말할 테니 말이다.
성교육의 1차 책임은 가정에 있다. 그런데 그 가정에서 해야 할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알려주는 게 아닌,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거였다. 성별로 아이들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고, 매사에 물어봐주고 그 대답을 존중해 주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에게 뽀뽀하기 전에 묻는다.
엄마가 뽀뽀해 줘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