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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Dec 07. 2023

그땐 그랬지. 아니 지금도 그래.

[나는 오늘도 10살 아이가 된다.]

‘부스럭부스럭’


여기저기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리의 정체는 빠른 귀가를 위해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분주함이다.


마지막 수업시간이 1~2분 정도 남았을 때쯤 이면 교실은 온통 일촉즉발 상태로 전환이 된다. 책상 위에 있는 볼펜을 필통 속에 부랴부랴 넣기도 하고 가방을 끌어안고 있기도 한다. 심지어 책은 이미 덮고 눈만 말똥히 강사를 쳐다보는 학생도 있다.


 요양보호사양성 강의를 16년째 하며 마주하는 모습이고 시간이 흘러 베테랑 강사가 되었어도 절대 극복할 수 없는 한계 지점이다.    

  

그런데 인지활동지도사 수업은 달랐다.


“이제 집에 가셔야 되는데요?”라고 말하며 내가 오히려 부지런함을 떤다.


종이접기를 하다가 완성이 안 되어서 조금만 더 접고 간다는 분도 있고, 공기 게임이 안 끝나서 또는 윷놀이 승부가 안 나서 더 해야 한다는 분도 있다.    

 

지식을 확장하는 공부가 아무리 유익해도 즐거에 흠뻑 빠져 들게 하는 놀이를 이기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요양보호사 양성강의는 공부 수업이고 인지활동지도사 강의는 놀이 수업이기 때문이다.


 놀이는 나이제한이 없다.     

 

회상요법 수업을 진행하면서 다시 깨닫게 된 것이다.


치매를 가졌거나 인지기능이 저하된 분들에게 인지기능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중에서 단연 우위에 두고 싶은 것이 회상요법이다. 치매 상태에 따라 적용하는 방법이 달라야겠지만 난 거동이 가능한 대상자를 돌본다는 가정 하에 몸으로 할 수 있는 놀이들을 적용해 보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들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나이를 떠올려 보라고 하면 10~15세 나이를 선택한다고 한다.


지금 이 나이의 아이들은 학업에 대한 부담감으로 놀이보다는 학원에 매여 있는 상황이 연상된다.


 그러나 현재 노인층에 해당하는 분들은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해 질 녘까지 신나게 놀던 추억을 떠올린다.   

  

커다란 나무에 두 손으로 가린 얼굴을 묻고 숫자를 세어본다. “하나, 둘, 셋, 넷.... 다 숨었니?”라는 외침과 함께 전력질주를 하며 탐정이 되었던 숨바꼭질을 떠올린다.


탐정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꼭꼭 숨어 있다가 해가 질 뻔했다며  숨기대장이었다는 것을 뽐내보기도 한다.   

  

담벼락 아래 쪼그리고 앉아 돌멩이로 한 알, 두 알을 세어가며 공기알 잡기 했던 야무진 손을 떠올린다.


검정 고무줄을 양쪽에서 잡고 노래에 맞추어 뛰었다 앉았다 했던 고무줄놀이 역시 추억의 타임머신을 열면 만나게 되는 옛 놀이 중 하나다.   

   

제기차기, 비석치기, 딱지치기, 윷놀이, 실뜨기 등등 옛 놀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수다요법 만으로도 회상의 효과는 어느 정도 맛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맛의 묘미를 다시 느껴보려면 그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      


“그땐 그랬지, 아니 지금도 그래”   

  

이 문장의 주인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난 놀이를 시작한다.


실뜨기 실을 두 손에 걸고 감았다 떼었다를 하며 모양을 만들어 간다. 실이 손에 감기는 순간 모양이 척척 만들어진다. 머릿속에 모양이 그려져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릴   적 손에 담아 두었던 동작 기억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그런데 실뜨기 놀이처럼 모두 척척 해내는 것은 아니다. 능숙하게 되지 않는 놀이들이 더 많다.    

 

제기를 손가락에 드는 순간 발이 올라간다. 그런데 마음과 몸이 따로 움직인다. 재빠르던 몸놀림은 어디로 가고 제기가 떨어지는 속도를 발이 따라가지 못한다. 그 모습이 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공깃돌을 올렸는데 손가락 관절이 무뎌져서 또로록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다. 떨어지는 공깃돌을 바라보며 유연함을 가져가버린 시간이 애석하다.  

    

열심히 접어온 딱지를 바닥에 대고 넘겨보려고 여러 번을 두드려 보지만 딱지가 아닌 바닥만 몇 번 치고 마는 경우도 있다. 눈이 침침해져서 초점이 잘 안 맞기도 한다.    

 

머리에 비석을 올리고 걸어가다 균형이 틀어져서 머리 뒤로 비석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허리가 구부러지지 않아 비석을 가슴 위에 올릴 수 없을 때도 있다.     

     

두 손을 앞사람 어깨 위에 올리고 “12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를 외치는 문지기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종종걸음도 해보고 달려보기도 한다.


 엎치락 뒤치락 뒤엉킨 상태로 좁은 강의실을 돌아다녀도 얼굴만큼은 해맑다.    

 

잘 되어서 즐거운 것이 아니다. 이겨서 즐거운 것도 아니다. 단지 그때로 다시 돌아가보니 지금도 변함없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것이다.   

  

아무 조건 없이 놀이 자체를 즐겼던 그 어린 시절을 우린 늘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조건을 따지고, 환경을 따지고, 상황을 따지느라 놀이 그 자체를 즐겨보는 법을 잠시 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회상요법 시간을 통해 내 안에 잠시 숨겨두었던 개구쟁이들을 모두 불러냈다.


 이 수업이 끝나고 다시 기억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해도 이제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언제든 어디서든 불러내기만 하면 “네”라는 대답과 함께 다시 신나게 놀이마당을 펼쳐 보기를 간절히 바본다.     


내가 사랑하는 내 제자샘들, 그들에게 늘 전하고 싶은 것은 용기다.


이미 할 수 있는 능력은 모두 가지고 있으나 그걸 꺼내기 위한 작은 불씨가 필요했을 뿐이다. 난 그 불씨가 되기 위해 나를 찾아온 선생님들에게

한바탕 바람을 불어넣어준다.     


“그땐 그랬지, 아니 지금도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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