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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Jan 19. 2024

실수를 평범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SNS를 여러개 하다보면 많은 댓글과 마주한다.

나 역시 누군가의 글이나 영상을 읽고 보는 독자를 동시에  하기도 한다.


내가 SNS의 글과 영상을 대할때 만들어 둔  철칙이 있다.


꼼꼼히 읽지 않은 글에 댓글은  쓰지 않는다.  댓글은 글쓴이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한 공감의 창이다.


 그 창은 언제나 투명하고 따뜻해야  한다. 그런데 꼼꼼히 읽지 않고 어떻게  공감 댓글을 적을 수 있는걸까?


 대화도 경청이 되어야 공감을 할 수 있다. 경청 기술이 여러가지가 있으나 가장 기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니 경청하는 자를 찾는 것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혹여나  비난이나 지적을 하고 싶거나 내 생각과 다르다면 구태여 그곳에 남길 이유는 무엇인가?


난 아직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글쓴이가 읽기에  불편한 댓글을 써가며 공감창을 어둡게 색칠하느니 그저 그대로 두는게 낫다.


 그 어둠은 공간을 벗어나 글쓴이의 마음까지 파고들 것이다. 그 후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 싶다.


댓글이 적히는 SNS중에 가장 예민해지는 곳은 유튜브다. 사실 거름망이 없는 곳이 유튜브여서 그럴수도 있다.


채널 주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 댓글과 몇번 마주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상처 받지 않으려 애를 써보던 시절도 있었다.


이 또한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 대처법을 만들어간다. 최근 2024년 버전으로 요양보호사 요점정리 편을 업로드 하고 있다. 이 영상도 하나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어제 하나의 댓글이 적혔다.


이 댓글을 읽는 순간 스쳐 지나가는 문장이 있었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그러나 실수가
특별해지냐,
평범해지냐는
지적과 걱정에 따라
달라진다.


유튜브는 수업시간이 아니니 어느 한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도 큰 문제는 없다. 그래서 중요도를 두지 않아서 빼놓은 부분인가 싶어 영상을 돌려 보았다.


중요도가 아니라 그저 그냥 뛰어 넘어간 부분은 맞다.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하나를 놓치게 된 것이다. 분명 실수에 대한 이야기 였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찾아왔다.


다름 아닌 글 속에 "걱정" 이라는 단어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정하실 부분이 생길까봐 걱정해 주는 그 마음이 글을 떠나 내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우려대로 수정을 해야 겠지만 수정은 어렵다. 그저 댓글을 적어주신 분 처럼 꼼꼼히 공부하는 분들에게 내 실수로 넘어갔으니 교재를 더 봐달라는 부탁의 말을 드리고 가려 한다.


실수를 지적하면 특별해진다. 


지적을 당하는 순간  실수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그 선명함은 글자를 떠나 마음 한구석을  파고드는 뾰족함으로 생채기를 낸다.


그러나 실수를 걱정하면 평범해진다. 


걱정을 해 주는 순간 실수는 흐려지기 때문이다. 그 흐려짐은 글자를 떠나 마음  한구석을 파고드는 온기로 따스히 덮어준다.


잘하고 유능한 것을 대하는 특별함과 부족하고 실수를 대하는 특별함도 반드시 차이를 두고 가야한다.


난 적어도 실수는 특별한 기억을 남겨두고 싶지 않다.


오늘은 특별함을 남기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평범함을 만들어 주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내모습도 점검해보는 하루가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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