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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Feb 08. 2024

난 마음을 셈하고 있습니다.

한 번 세어본다.

또 한 번 세어본다.

다시 세어본다.


난 오늘도 당신의 마음을 세어보고 있습니다.


당신의 상황을,

당신의 마음을,

당신의 생각을,


모두 헤아리며 기다려 봅니다.


이 모든 과정에 "왜"라는 단어를

넣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이렇게 아주 잠시라도

의문문을 마음에  담았더라면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유난히 지치는 날이 있습니다.  

단 하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을 질질 끌고 다니며 만신창이를 만드는 날이 있습니다.



이미 세상 속에 나를 던질 때는 그 몫을 감당할 마음까지 무장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지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말은 아닙니다.


며칠 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응대를 해도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아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저에게 얻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오신 건가요? 아니면 저를 공격하고 싶어 오신 건가요? 의아해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고 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격이 맞습니다.  나에게 물어봤던 모든 질문에서 "왜"라는 헤아림은 한순간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요.


상황은 종료가 되었지만 잔잔함을 찾기 위한 노력은 이제부터 시작이 되어야 했습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아래문장을 만났고, 이 문장을 통한 사색이 해답처럼 다가왔습니다.


사람 속이

과학적 측정과 탐구

대상이라기보다

헤아림의 대상이듯,

자연이 품은 수심의 의미 역시

끊임없는 호기심과

보살핌으로  헤아려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유영만 작가님


사람의 마음은 헤아림의 대상이지 측정과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직접대면을 하는 만남이든 온라인 세상에서 만나게 된 만남이든 모든 만남의 전제조건은 헤아림 하나여야 합니다.


측정과 탐구를 전제로 둔 만남이라면  비난과 지적으로 끝이 나게 될 테니까요. 그 만남은 삭제 버튼을 누르며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악연이 될 겁니다.


난 이 일을 통해 다시 셈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악연으로 남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번 세어보고, 또 한 번 세어보고, 다시 세어봅니다.

 "왜"라는 글자를 곳곳에  넣어 의문문을 만들어 볼 겁니다.

그 대답은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다시 돌아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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