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신비

야, 그거 아픈 것도 못 참냐.

그냥 그렇게 지내, 다 그렇지 뭐.


이런저런 수술을 겪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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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프면 병원 좀 가.

병원비 얼마나 한다고.

이러다 병 키우면 돈이 더 나가요.


영화 대사 같은 이 말, 수십 번도 더 했더랬다.


검사받았다가 괜히 다른 큰 병이라도 나오면 어떡허냐.

뭐 아무렇지도 않은데,

맨소래담 바르고 요거 냄새 맡으면 속이 뻥 뚫리고 괘않더라.

그냥 둬,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어.


그렇게 몇 달, 아니 일 년쯤 지났을까


야야, 어째 피가 좀 많이 난다. 병원 한 번 가봐야 쓰겄다.


아이고, 이렇게 커질 때까지 왜 참으셨어요.

오늘 당장 입원하고 내일 수술하세요.


서울 병원으로 가라는 지인들.

아 그럼 간병은 누가 하간디. 그냥 동네서 헙시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지만, 꽤 커서 떼어 내야 하는 수술.


수술실.

이 세 글자, 스무살 나에게 어찌나 무겁던지.

그때 엄마 친구분들의 묵주 기도 소리가 들렸다.


지수야, 우리가 여기 있을 테니 시내 가서 좀 쉬었다 와.


6시간의 수술.

다행히 잘 깨어나셨고, 그때 처음 마약 무통주사가 있다는 걸 배웠다.


야, 제 몸 컨디션 찾으려면 한 3년은 걸린다니께, 3년.

... 수술할 때 근육을 끊어 놓는다 카던데,

그래서 그러나 여기저기 아픈 것 같기도 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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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한국 방문.

갑자기 수술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간단한 수술이지만, 갑자기 칼을 대야 하다니.

며칠 고민 끝에 아이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 당시는 괜찮았지만 6개월 후쯤 재발.

지금까지 관리하며 지내게 되었다.


야야, 그거 아픈 것도 하나 못 참냐.

괜찮네, 그냥 관리하며 지내도 돼야.

고통도 기도 중에 바치거라.

기도해, 그래. 끊는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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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까지만 해도 아프면 재깍재깍 병원에 가던 나.


아이들 낳고 해외에서 지내다 보니

엄마가 왜 병원 가기를 주저했는지 알 것도 같다.


가기 꺼려하던 병원도 단박에 가서는

'여기서 헙시다'라고 하신 이유도 어렴풋이나마.


그래, 나도 용기 내어 병원에 또 가야 하겠지.



그래서일까

고통의 신비는 유독 아픈 기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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