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감정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집 안에 머무는 시간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20대 초반에는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고,
몇 년 전부터는 제주에 정착해
어느덧 6년 가까이 살아왔다.
본가는 그저 ‘잠시 들르는 곳’ 정도로
여겨진 지 오래였다.
그러다 최근,
퇴사 후 몇 달간 본가에서 지내게 되면서
생각지 못한 감정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여행처럼 스쳐 지나가던 시간과
실제로 머물며 함께 살아내는 시간은 분명 달랐다.
며칠 머물다 떠날 때는 몰랐던 감정들이
길게 머무는 동안 서서히 선명해졌다.
가장 크게 다가온 건 부모님의 삶의 태도였다.
예전에도 치열하게 사셨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직접 보니
마음이 묘하게 흔들렸다.
나도 내 방식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 앞에 서면 왠지 모를 부족함이 느껴졌다.
그러다 예전의 내가 부모님께
이것저것 도와드리던 기억이 스쳤다.
특히 스마트폰 같은 건
늘 내가 맡아서 처리해드리곤 했는데,
이젠 두 분이 혼자서도
척척 해내시는 모습이 익숙했다.
어느 날은 아빠가 누군가의 주문을
능숙하게 도와주고 계시는 모습을 보고
순간 울컥했다.
‘아,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처음엔 하나하나 물어보며 배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또 한 번 찌르르했다.
가까이 살았다면 더 도와드릴 수 있었을 텐데,
죄책감 같은 감정이 불쑥 올라왔다.
하지만 부모님은 웃으면서
“이제는 우리도 잘한다”며 가볍게 넘어가셨다.
그 순간 깨달았다.
자책보다는 지금 곁에 있는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잠시 머무는 이 시간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머무는 것만으로도
낯설고 불편했지만,
지금은 이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마음들이 있다.
익숙하던 것들이 낯설어지고,
낯설던 감정들이 익숙해지는 흐름 속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변하고 있다.
본가의 공기에 익숙해지는 사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자라났다.
그리고 이 변화는
조용하지만 확실한 방식으로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