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 위에 서 있었지만, 마음은 조금 다른 속도로 걷고 있었다.
한동안 나는
혼자 걷는 일에 익숙해 있었다.
누군가 옆에 없다는
사실이 더 이상 외롭지 않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들이 점점 편해졌다.
침묵은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마음이 숨을 쉬었다.
그러다 어느 날,
오랜만에 누군가와 나란히 걸었다.
익숙한 길이었다.
나는 그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발끝이 맞닿는 리듬도,
서로의 숨결이 섞이는 공기도 어쩐지 어색했다.
그는 가볍게 무언가를 물었고,
나는 대답 대신 짧은 웃음으로 넘겼다.
그 사이에 아주 작은,
그러나 분명한 침묵의 거리가 생겼다.
그 침묵은 오래 머물렀다.
말을 하지 않아도
대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다.
그 둘의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마음이 엇갈리고,
말 한마디만 늦어져도 온기가 식는다.
그날의 우리는 그 경계 위를 걷고 있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서로를 의식하지만 완전히 닿지 않는 공기.
그 미묘한 온도가 나를 오래 붙잡았다.
나는 한때 침묵을 ‘안정’이라 믿었다.
불필요한 말이 없다는 건,
관계가 편안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말이 없다는 게,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때로는 그 침묵이 사이의 틈이
되기도 한다는 걸.
그 틈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자주 엇갈릴까.
분명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왜 마음의 속도는 늘 다를까.
그는 앞을 보고 걸었고,
나는 그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그게 전부였는데도,
이상하게 멀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거리’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가까워질수록 조심스러워지는 거리,
멀어질수록 그리워지는 거리.
우리는 늘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안다.
모든 관계에는 작은 침묵의 거리가 존재한다는 걸.
그건 틈이 아니라 숨 쉴 공간일지도 모른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관계는 오래 버티지 못하니까.
침묵은 때로 그 균형을
지켜주는 묵음 같은 것이다.
함께 걷는다는 건,
같은 속도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침묵을 견디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조용한 순간에도
상대의 마음이 내 옆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걸 믿는 일.
나는 아직 그 거리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언젠가,
누군가와 나란히 걷는 침묵 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날의 짧은 거리,
그 작은 침묵이 내 안에 남아
지금도 천천히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