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불빛 아래에서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천천히 내 안을 비추기 시작했다.

by 서녘

밤은 언제나 나를 가장 솔직하게 만든다.


낮에는 버텼던 표정이 무너지고,

억눌렀던 생각이 스며나온다.


불빛 하나 없는 방 안에서,

나는 종종 나 자신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길을 걷기 시작한 이유를 잊은 채,

이제는 그저 걸음을 멈추지 않기 위해

걷고 있는 듯한 날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속에서 아주 작은 평온이 생겼다.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

그 마음이 내 안에

조용히 불을 켜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멈춰야 했는지,

왜 그토록 서둘렀는지,


그리고 무엇을 향해

이렇게 오래 걸어왔는지조차.


그러나 이제는 그 ‘모름’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답을 얻지 못하면

불안했지만,

지금의 나는 질문이

남아 있는 상태

그대로를 살아간다.


그건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나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상태다.


정답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나와 화해하기 시작했다.


불빛은 아주 미약하지만,

방향을 잃게 하진 않는다.


그 빛이 닿는 만큼만

보아도 충분하다.

이제는 멀리 보지 않아도 괜찮다.


한 걸음 앞의 거리,

그 정도면 된다.

나는 그 작은 빛 아래에서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존재하고 있다.


서툴지만 걷고 있고,

때로는 멈춰서 숨을 고른다.


그 모든 시간이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왔다.


이제는 안다.


삶은 커다란 깨달음보다,

작은 순간의 인식들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빨간불 앞의 멈춤,

질문의 목소리,


욕망과 진심 사이에서

흔들리던 밤들,


그리고 여전히

도착하지 않은 자리.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든 층이다.


나는 그 위를 천천히 걷는다.


조용한 불빛이

내 발끝을 비출 만큼만.


그 빛이 완전히 꺼지지 않는 한,

나는 계속 걸을 것이다.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여전히

그 불빛을 향해 있다는 사실이다.

월요일 연재